국가가 경제를 통제하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생각마저 통제하게 된다. 1944년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노예의 길』에서 남긴 경고다. 5년 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로 그 경고를 형상화했다. 전체주의 국가가 역사를 다시 쓰고, 언어를 재정의하고, 시민의 기억을 지워나가는 세계. 오웰의 '기억의 구멍(memory hole)'은 불편한 사실을 흔적도 없이 소각하는 장치였다. 두 사람의 경고는 80년이 지난 지금, 화폐라는 형태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고 있다.
하이에크는 소련과 나치 독일에서 벌어진 기이한 현상을 지목했다. '독일 물리학'이 등장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 외과학'이 생겨났다. 이념에 맞지 않는 과학적 결론은 억압됐다. 지식은 진리 탐구가 아니라 체제 정당화의 도구로 전락했다. 그는 이를 "집산주의적 사고의 비극"이라 불렀다. 이성을 최고 가치로 내세우며 시작한 체제가 결국 이성 자체를 파괴한다는 역설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돌아보면 이것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마스크 효과에 의문을 제기한 연구자들은 '가짜 뉴스 유포자'로 낙인찍혔고 플랫폼에서 퇴출됐다. 그 의문이 정당했음은 2024년에야 인정됐다.
역사는 화폐를 장악한 국가가 무엇을 했는지 이미 보여줬다. 1923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빵 한 덩이 값이 수천억 마르크에 달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경제 실패가 아니었다. 전쟁 배상금을 감당하기 위해 화폐 발행기를 멈추지 않은 국가의 선택이었다. 시민의 저축과 삶은 한순간에 증발했다. 1971년 닉슨의 금태환 정지 선언 이후 달러는 실물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이후 반세기 동안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전례 없는 규모로 통화를 공급했고 그 비용은 인플레이션으로 시민에게 전가됐다. 화폐 발행권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간극은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벌어졌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는 이 역사의 연장선 위에 있다. 단지 디지털이라는 점만 다르다. 오히려 디지털이기 때문에 통제는 더 정밀해진다. 바이마르의 정부는 화폐를 찍어낼 수 있었지만 특정 시민의 지갑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거나 특정 용도의 지출을 차단할 수는 없었다. CBDC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유효기간이 있는 화폐로 소비를 강제하고, 반정부 성향 시민의 계좌를 동결하고, 특정 품목 구매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 모든 것이 CBDC 설계에서 실제로 논의되는 기능들이다. 하이에크가 경고한 경제 통제의 21세기 완성형이다.
비트코인이 등장하고 스테이블코인이 확산되며 탈중앙 금융이 제도권의 저항 속에서도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은 이 맥락에서 읽혀야 한다. 검열 불가능한 거래, 허가 없는 접근, 소급 수정이 불가능한 분산원장은 기술 사양이 아니라 철학적 선언이다. 본지가 탈중앙 금융의 가치를 지지하는 것은 단순한 산업적 입장이 아니다. 화폐의 자유가 곧 개인의 자유라는, 하이에크와 오웰이 각자의 언어로 남긴 교훈에 대한 응답이다. 국가가 화폐를 프로그래밍하는 날, 시민의 자유는 권력의 재량 안으로 들어간다. 그 날이 오지 않도록 감시하고 기록하는 것이 본지가 존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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