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본지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KRWQ 팀과 인터뷰를 했다. 바클레이즈, TD뱅크를 거친 캐나다 국적의 한국계가, 싱가포르에 앉아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하루 270억 달러가 오가는 원화 NDF 시장을 블록체인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문페이가 우리은행과 손을 잡았다. EU MiCA 인가와 뉴욕 비트라이선스를 가진 글로벌 기업이 한국 4대 시중은행 중 하나와 원화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을 만든 것이다. 원화가 토큰화되는 장면을 연달아 취재했다. 설렘과 씁쓸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원화 토큰화의 주인공이 한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KRWQ는 트레이딩이 답이라고 한다. 원화 NDF 시장의 기관 자금을 온체인으로 가져오는 것이 존재 이유다. 문페이는 정반대다. 은행과 컨소시엄을 꾸려 송금·가맹점 결제·크로스보더 정산을 공략한다. 누가 맞느냐는 시장이 판단할 일이다. 지금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두 프로젝트 모두 한국 규제 체계 밖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숫자는 냉정하다.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2025년 6월까지 1년간 한국 원화 기준 스테이블코인 거래 규모는 약 640억 달러다. 한국인은 이미 스테이블코인을 쓰고 있다. 다만 원화가 아닌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쓰고 있을 뿐이다. KRWQ는 역외에서 신한증권 수탁 국채·USDC·frxUSD로 준비금을 쌓고, 실시간 대시보드로 공개하고 있다. 문페이는 EU·미국·영국·호주의 규제 인허가를 무기로 들고 한국에 들어왔다. 그 사이 한국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후보들은 법안 통과만 기다리고 있다. KB금융이 분과를 만들고, 신한은행이 CBDC 실증사업을 했지만, 법안 없이는 한 발짝도 못 움직인다. 그 법안이 언제 통과될지 아무도 모른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핀테크 제품이 아니다. 원화의 국제적 유통 채널을 누가 설계하느냐의 문제다. 원화 기반 국채 수요를 누가 만들어내느냐의 문제다. 원화 자본 이동 데이터를 누가 먼저 축적하느냐의 문제다. 한마디로, 통화 주권의 문제다.
KRWQ 측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동성이 풍부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한국 국채에 대한 구조적 수요를 만들어 차입 비용을 낮출 수 있다. 그것은 정부와 기업, 궁극적으로 모든 한국인에게 이익이 된다." 과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비전을 캐나다 국적의 한국계가 싱가포르에서 실행하고 있다는 점은 되새겨야 한다. 문페이의 이부건 APAC 총괄은 "한국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에서 사용 가능하고 상호 운용 가능한 형태가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원화의 글로벌 디지털 레일을 깔겠다는 선언이다. 한국 정부가 깔지 못하면, 외국 기업이 깔아버린다.
기시감이 든다. 2017년 정부가 ICO를 전면 금지하자, 한국 블록체인 기업들은 싱가포르와 스위스에 재단을 세워 토큰을 발행하고 국내 거래소에 상장·유통했다. 법이 없어서 해외로 나간 것이다. 지금 원화 스테이블코인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IQ와 Frax는 케이맨에서 KRWQ를 발행했고, 문페이는 글로벌 인허가를 갖춘 채 한국 은행과 손을 잡았다. 규제 공백이 만든 ICO의 데자뷔다.
신한증권이 KRWQ의 국채 수탁을 맡고, 우리은행이 문페이와 컨소시엄을 결성한 것을 두고 국내 은행을 탓하는 시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은행을 비난할 일이 아니다. 글로벌 프로젝트가 파트너십을 제안하면 받아들이는 것은 은행으로서 당연한 판단이다. 국내에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은행은 주어진 규제 안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한 것이다.
오히려 질문을 던져야 할 곳은 국내 핀테크·블록체인 기업들이다. 법이 없다고 멈춰 서 있을 것인가. 문페이가 EU MiCA를 먼저 따고, KRWQ가 역외에서 준비금 데이터를 쌓는 동안, 국내 기업들은 왜 해외 전략을 세우지 않는가. 2017년 ICO 때는 해외로 나갈 줄 알았던 한국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에서는 국내 법안만 바라보며 서 있다. 규제를 기다리는 것과 규제에 갇히는 것은 다르다.
본지는 규제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 통제 우회 우려도, 뱅크런 리스크도 실재한다. 그러나 '위험을 막기 위한 논쟁'이 '기회를 놓치는 현실'을 만들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위험이다. 51%룰이든 핀테크 개방이든 결론을 내야 한다. 완벽한 답이 없으면 샌드박스라도 먼저 열어야 한다. "누가 발행하느냐"보다 "어떻게 작동하게 할 것이냐"가 시급하다.
KRWQ와 문페이가 증명한 것은 하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수요는 이미 존재한다. 그 수요를 한국 안에서 채울 것인가, 해외에 내줄 것인가. 이것은 핀테크 정책이 아니라 통화 주권의 문제다. 원화의 디지털 주권을 지킬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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