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에서 시작된 자동화 시장조성자, 즉 AMM(Automated Market Maker)이 전통 주식시장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AMM은 유니스왑 같은 탈중앙화거래소의 핵심 기술로 여겨졌다. 투자자가 유동성 풀에 자산을 예치하면, 거래자는 호가창이 아니라 이 풀을 상대로 거래한다. 가격은 매수·매도 호가가 아니라 풀 안의 자산 비율에 따라 자동으로 결정된다.
이 구조가 주식시장에 적용될 경우 기존 호가창 기반 거래보다 거래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캐나다 맥마스터대 Katya Malinova 교수와 토론토대 Andreas Park 교수는 2026년 6월 공개한 논문에서 AMM을 미국 주식시장 데이터에 적용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전통 시장 대비 거래비용이 38~55% 낮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절감액은 미국 주식시장 전체 기준 연간 약 79억~90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는 계산도 제시됐다.
이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디파이 기술이 좋다”는 주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AMM을 블록체인 기술 자체가 아니라 하나의 시장 설계 방식으로 봤다. 즉, AMM은 반드시 퍼블릭 블록체인 위에서만 작동해야 하는 장치가 아니라, 전통 거래소나 토큰화 증권 인프라 안에서도 구현 가능한 거래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현재 주식시장의 핵심 구조는 호가창이다. 매수자와 매도자가 주문을 내고, 시장조성자나 고빈도거래업자가 유동성을 공급한다. 문제는 이 구조에서 유동성 공급이 전문 사업자의 영역으로 굳어졌다는 점이다. 데이터, 서버, 네트워크, 초단타 대응 능력이 없으면 개인이나 장기 보유자는 시장조성에 참여하기 어렵다.
AMM은 이 지점을 다르게 접근한다. 장기 보유자가 보유 주식과 현금을 유동성 풀에 넣으면, 거래자는 그 풀을 상대로 거래한다. 유동성 공급자는 별도로 호가를 제출하거나 취소할 필요가 없다. 연구진은 이를 “진정한 의미의 수동적 유동성 공급”이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주식을 오래 들고 있을 투자자가 자기 자산을 놀리지 않고 시장 유동성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핵심은 수수료 설계다. 전통 시장의 시장조성자는 매수·매도 스프레드를 통해 보상받는다. 그러나 AMM에서는 매수와 매도가 균형을 이루면 풀의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오기 때문에 스프레드 수익이 자동으로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유동성 공급자는 거래 수수료를 통해 보상받아야 한다.
연구진은 각 주식의 변동성, 거래량, 주문 크기를 바탕으로 주식별 최적 AMM 수수료를 산출했다. 결과는 예상보다 낮았다. 미국 주식 데이터를 기준으로 최적 AMM 수수료는 평균 2~3bp 수준이었다. 반면 기존 시장의 호가 기준 절반 스프레드는 평균 18.3bp, 체결 기준 절반 스프레드는 평균 9.2bp였다. AMM의 총 거래비용은 수수료와 가격충격을 합쳐 평균 4.5~6.0bp로 계산됐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AMM의 비용 절감 효과가 대형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존 연구들은 AMM이 변동성이 작고 거래량이 많은 대형 자산에는 유리하지만, 소형주에는 불리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이번 논문은 주식별로 수수료를 다르게 설계하면 소형주에서도 AMM이 기존 시장보다 낮은 비용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토큰화 증권 시장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토큰화 주식이나 토큰화 펀드가 단순히 기존 증권을 블록체인 위에 옮겨놓는 수준에 그친다면 혁신의 폭은 제한적이다. 반대로 거래·청산·결제뿐 아니라 유동성 공급 방식까지 바뀐다면 시장구조 자체가 재설계될 수 있다.
물론 현실의 벽은 높다. 주식 AMM을 구현하려면 증권 보관, 투자자 보호, 배당과 의결권 처리, 세금 문제, 기존 거래소 규칙과의 충돌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AMM 풀에 예치된 주식의 소유권을 어떻게 볼 것인지, 유동성 공급자의 세금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기존 최선집행 의무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도 과제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디파이는 전통 금융을 대체하지 못했지만, 전통 금융이 배워야 할 시장 설계 실험을 축적했다. AMM은 그 대표 사례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태어난 구조가 주식시장으로 역수입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한국 역시 토큰증권, 실물자산 토큰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논의는 아직 발행 규제와 투자자 보호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는 더 본질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토큰화된 자산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누가 유동성을 공급하며 거래될 것인가.
AMM은 그 답 중 하나일 수 있다. 적어도 이번 연구는 이렇게 말한다. 시장의 미래는 단순히 블록체인 위에 증권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호가창 자체를 다시 묻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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