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상반기 암호화폐 시장은 특정 ‘내러티브’가 전반을 이끄는 국면에서 벗어나 실사용과 매출, 이용자 잔존율로 평가받는 ‘PMF’ 중심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타이거리서치(Tiger Research)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 디파이, 실물연계자산(RWA), 예측시장, 밈코인이 침체된 시장 환경에서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생존과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암호화폐 시장은 디파이(DeFi), NFT, 게임파이(GameFi), 레이어1·레이어2, 리스테이킹처럼 한 시기마다 하나의 강력한 내러티브가 유동성을 흡수하는 구조를 반복해 왔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지속 가능성보다 기대감에 크게 기대는 경향이 강했다. 대표적으로 게임파이 열풍의 핵심 사례였던 액시 인피니티는 월평균 플레이어 수가 2022년 1월 280만 명에서 2026년 5월 8000명대로 99.7% 급감했다. 이는 자본과 구호가 앞섰더라도 실질적인 수요를 입증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빠르게 퇴조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실제 타이거리서치는 2025년을 내러티브 소비의 정점으로 규정했다. AI 에이전트 이후 거의 매달 새로운 테마가 등장했고, 전환 속도도 갈수록 빨라졌다. 다만 시장 수요의 본질은 문제 해결 능력이 아니라 토큰 가격 상승 기대에 쏠려 있었다는 점이 한계로 지목됐다.
보고서는 이런 흐름을 ‘수요 없는 공급의 혁신’으로 요약했다. 예컨대 탈중앙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창작자 보상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등장하더라도, 초기에는 토큰 보상과 에어드롭으로 사용자를 끌어모으고 이후 제품 개발이 정체되면 유동성과 이용자가 빠르게 빠져나가는 방식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결국 2026년 시장은 더 이상 선언적 비전만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반복 사용을 이끌고 실제 매출을 창출하는 프로젝트만 생존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최전선에는 스테이블코인이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본래 변동성을 피하기 위한 거래 수단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국경 간 송금과 온체인 결제 인프라로 기능이 확대됐다. 카테고리 시가총액은 3042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인 3210억 달러에 근접했다. 테더(USDT)는 시가총액 1840억8000만 달러, 월 결제량 1조7900억 달러, 12개월 누적 결제량 10조2000억 달러를 기록했다. 서클(USDC) 역시 732억5000만 달러 규모로 주요 거래소와 기관 결제 채널에서 핵심 스테이블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비자, 마스터카드, 스트라이프, 코인베이스, 블랙록 등이 참여한 OUSD가 2026년 6월 발표되면서 제도권 연계도 빨라지고 있다. 비달러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아직 12억 달러 수준이지만 보유 지갑 수는 2023년 1월 4만 개에서 2026년 3월 120만 개로 급증했다.
디파이도 생존 방식이 달라졌다. 초기에는 은행 같은 중개자의 이윤을 이용자에게 돌려주겠다는 이념이 전면에 섰지만, 지금은 기관의 온체인 금융 수요를 충족하는 인프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아베(Aave)는 TVL 145억3000만 달러, 연매출 1억1900만 달러를 기록하며 디파이 대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모포(Morpho)는 TVL 74억9700만 달러를 확보하며 기관 친화적 리스크 관리 수요를 흡수했고, 유니스왑(Uniswap)은 연매출 8억5000만 달러, 24시간 거래량 26억6000만 달러로 탈중앙화 거래소의 지배적 지위를 이어갔다.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는 연매출 8억7400만 달러, 온체인 무기한선물 시장 최대 70% 점유율을 바탕으로 디파이의 수익성과 사용성을 동시에 입증한 사례로 꼽힌다.
실물연계자산(RWA)도 주목할 만한 분야다. 이 섹터는 전통 자산의 접근성 확대를 내세우며 출발했지만, 지금은 기관 중심의 효율성 개선 수단으로 진화했다. 카테고리 시가총액은 652억 달러이며, 이 가운데 토큰화 국채가 134억 달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온도파이낸스(Ondo Finance)는 TVL 35억2000만 달러 규모의 대표 사업자로 떠올랐고, 블랙록의 BUIDL은 24억 달러 규모의 단일 국채 펀드로 성장했다. 메이플파이낸스(Maple Finance)는 사모신용 AUM 40억 달러로 존재감을 키웠다. 최근에는 토큰화 주식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DTCC는 2026년 7월 50개 이상 기관과 함께 토큰화 증권 실거래를 시작했고, 시큐리타이즈는 미국 증시 상장과 동시에 아발란체, 솔라나(SOL) 등 여러 체인에 토큰화 주식을 발행했다. 다만 디파이와 비교하면 거래량이나 담보 활용도는 아직 제한적이어서, 본격적인 ‘머니 레고’ 단계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평가다.
예측시장은 2026년 들어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분야로 분류된다. 단순 베팅을 넘어 온체인 실사용자를 유입시키는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칼시(Kalshi)는 누적 20억 달러 조달과 기업가치 220억 달러를 인정받았고, 6월 한 달 거래량만 315억 달러를 기록했다. 폴리마켓(Polymarket)은 누적 약 16억 달러 조달, 기업가치 90억 달러 수준으로 평가되며 6월 거래량 102억6000만 달러를 나타냈다. 월드컵 기간 스포츠 컨트랙트가 거래량의 약 80%를 차지하며 급성장을 견인했지만, 결승전 이후 미결제약정은 고점 대비 20% 가까이 줄었다. 규제 변수도 여전하다. 2026년 7월 21일 워싱턴주 법원은 칼시의 스포츠 이벤트 컨트랙트 판매에 대해 불법 도박 소지가 있다며 일시 금지 명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예측시장은 토큰 시가총액이나 TVL에만 의존하지 않고 실제 거래량과 매출로 존재 가치를 입증했다는 점에서 ‘실사용’의 상징으로 평가된다.
밈코인은 여전히 가장 독특한 위치에 있다. 뚜렷한 유틸리티는 없지만, 유동성과 관심을 단기간에 결집시키는 기능은 여전하다. 카테고리 시가총액은 256억8000만 달러로 예측시장보다 크다. 도지코인과 시바이누가 전체의 53.4%를 차지하며 상징 자산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밈코인은 신규 체인과 애플리케이션의 초기 부트스트래핑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Pump.fun은 2025년 7월 퍼블릭세일 12분 만에 6억 달러를 조달했고, 로빈후드 체인의 ‘CASHCAT’은 출시 1주 만에 시가총액이 2100% 넘게 급등하며 체인 전체의 TVL과 거래량 확대를 이끌었다. 실제로 로빈후드 체인 TVL은 7월 3일 1700만 달러에서 7월 13일 3억1200만 달러로 급증했고, 일일 DEX 거래량도 8억4680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밈코인의 장기 가치보다는 ‘유저 유입과 온보딩 도구’라는 기능적 재해석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2026년 암호화폐 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PMF’다. 한쪽에서는 밈코인, 무기한선물 DEX, 예측시장처럼 높은 변동성과 즉각적 보상을 원하는 투기적 수요가 강하게 존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스테이블코인, RWA, 디파이처럼 자산 보관과 이전, 담보 설정, 수익화, 리스크 관리를 위한 실질 금융 수요가 분명히 형성되고 있다. 시장은 이제 토큰 가격보다 사용 빈도, 잔존 자본, 수수료 매출, 운영 역량을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타이거리서치(Tiger Research)는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프로젝트의 조건으로 반복 사용되는 제품,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를 꼽았다. ‘내러티브’가 관심을 만들 수는 있어도, 실제 사용성과 매출이 없는 프로젝트는 더 이상 시장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2026년 암호화폐 시장은 화려한 구호보다 숫자로 증명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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