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가 결제하는 시대 온다…타이거리서치, 지갑업계 선점 경쟁 주목

| 이도현 기자

AI 에이전트가 자율적으로 트레이딩하고 결제까지 수행하는 시대를 앞두고, 암호화폐 지갑 업계가 선제적으로 ‘에이전트 전용 지갑’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타이거리서치(Tiger Research)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코인베이스와 바이낸스 등 주요 사업자들이 당장 수익성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AI 에이전트 결제 인프라를 확장하는 이유는, 향후 본격화될 ‘에이전트 경제’의 자금 흐름과 데이터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에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AI 에이전트의 활용은 일상 소비보다 암호화폐 생태계 내 트레이딩 봇에 집중돼 있다. 올해 초 예측시장 폴리마켓에서는 AI 에이전트에 50달러를 지급한 뒤 스스로 API 비용과 서버비를 벌어 충당하도록 설계한 실험이 주목을 받았다. 에이전트는 실제 자율 트레이딩을 수행했고, 이는 AI가 단순 보조 도구를 넘어 독립된 경제 행위자로 진화할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됐다.

다만 핵심은 트레이딩 그 자체보다 ‘결제 구조’에 있다. 타이거리서치는 AI 에이전트가 향후 브라우저를 직접 탐색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API를 호출하는 ‘브라우저리스’ 환경에서 움직일 경우, 결제 단위가 0.001달러 또는 0.00001달러 수준의 초소액으로 잘게 쪼개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사람이 가끔 수행하는 고액 결제와 달리, AI 에이전트는 같은 작업 하나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수십 회에서 수천 회의 미세 결제를 연속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기존 카드 결제 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난다. 카드 결제는 명의자 중심 구조와 차지백, 건당 고정 수수료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AI 에이전트 기반 초소액 결제를 감당하기 어렵다. 반면 암호화폐 지갑은 돈의 흐름을 조건별로 분할·전송·정산하는 ‘프로그래머블’한 구조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AI 에이전트 결제의 출발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결국 사람을 위한 결제 네트워크와 기계를 위한 결제 인프라가 분리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시장 참여자들의 행보도 이를 뒷받침한다. 보고서는 거래소뿐 아니라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까지 에이전트 월렛 인프라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고 짚었다. 표면적으로는 아직 유의미한 매출이 발생하지 않지만, 향후 AI 에이전트가 대규모 거래를 만들기 시작하면 해당 수요를 자사 인프라로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수익을 노리는 사업이 아니라 미래 고객과 결제 흐름을 먼저 확보하는 ‘선점 경쟁’에 가깝다.

실제 수익 잠재력은 상당하다. 타이거리서치(Tiger Research)는 코인베이스의 월간 활성 사용자(MTU) 920만 명을 기준으로 AI 에이전트 도입률, 사용자당 에이전트 수, 일일 호출 빈도를 조합해 시나리오별 매출 증가 효과를 추산했다. 보수적 시나리오에서는 연간 약 8400만 달러의 추가 매출이 예상됐고, 중립적 시나리오에서는 33억6000만 달러로 확대됐다. 공격적 시나리오에서는 연간 503억7000만 달러에 달해 현재 총매출의 약 7배에 이르는 초대형 매출원이 형성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이 시장은 선형이 아니라 곱셈 구조로 성장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도입률이 오르고, 사용자당 에이전트 수가 늘고, 호출 빈도까지 증가하면 전체 거래량과 결제 횟수는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한다. AI 에이전트 결제 시장이 한 번 대중화 궤도에 오를 경우, 지갑 사업자에게는 단순 수수료 이상의 구조적 성장이 열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갑 사업의 확장성은 결제 수수료에 그치지 않는다. 보고서는 에이전트 지갑에 축적되는 거래 내역이 향후 신용평가 데이터로 기능할 수 있다고 봤다. 특정 AI 에이전트가 얼마나 자주 거래하고, 실제로 어느 정도 매출을 창출하며, 수익성과 지속성을 얼마나 유지하는지가 데이터로 쌓이면 이를 바탕으로 금융 서비스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는 스트라이프 캐피털 사례를 제시했다. 스트라이프는 외부 신용평가보다 자사 결제망에서 확보한 가맹점 매출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출을 집행하며 결제 데이터 기반 금융 확장의 대표 사례를 만들었다. 같은 논리로 AI 에이전트 지갑 사업자도 추후 에이전트 전용 매출연계금융(RBF)이나 운영자금 선지급 등 ‘에이전트 네오뱅킹’ 모델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아직은 기대가 현실을 앞선 단계다. AI 에이전트 결제는 환각에 따른 오결제,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 차단, 낮은 구매 전환율 등 기술적 문제를 안고 있다. 여기에 x402, AP2, MPP 등 결제 프로토콜이 표준화되지 않았고, 법적 주체가 아닌 AI 에이전트에 대한 신원확인(KYC)과 규제 체계 역시 미비하다. AI 에이전트가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려면 기술, 제도, 책임 구조가 함께 정비돼야 한다.

결국 현재의 경쟁은 당장 실적을 겨루는 싸움이 아니다. 애플 앱스토어와 위챗페이 생태계가 자리 잡는 데 수년이 걸렸던 것처럼, AI 에이전트 지갑 시장도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업계가 지금 움직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AI 에이전트와 암호화폐 지갑이 결합하는 순간, 미래 디지털 경제의 결제 인프라와 데이터 주권을 누가 쥘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이전트 경제’의 본게임은 아직 시작 전이지만, 시장의 판은 이미 조용히 짜이고 있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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