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물에 갇힌 한국, 700조원은 해외로…타이거리서치, 디지털자산 수요 대이동 경고

| 이도현 기자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이 여전히 현물 거래 중심에 머무는 사이, 충족되지 못한 투자 수요는 해외 거래소와 온체인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이거리서치(Tiger Research)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체이널리시스와 함께 약 12만 개의 국내 투자자 추정 지갑을 추적한 결과, 2021년부터 2026년까지 약 700조 원이 해외로 유출됐다고 분석했다. 이는 단순한 자본 이동을 넘어 파생상품, 예측시장, 스테이블코인 결제 등 글로벌 디지털자산 시장 전반으로 국내 수요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진단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자산 시장은 비트코인(BTC)·이더리움(ETH) 현물 ETF를 통한 기관 자금 유입, 무기한선물과 옵션을 포함한 파생상품 확대,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와 송금, 실물자산 토큰화 등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반면 한국 시장은 개인 투자자의 현물 거래 비중이 높고 기관 참여와 신상품 공급이 제한돼 구조적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차이는 거래 데이터에서도 드러난다. 글로벌 거래소들이 현물 외에 파생상품과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확장하는 동안 국내 거래는 현물 편중이 심화했고, 주요 국내외 거래소 전체 거래대금에서 국내 거래소 비중은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보고서는 이를 한국 시장 경쟁력 약화의 신호로 해석했다.

해외 자금 유출 규모는 예상보다 컸다. 타이거리서치(Tiger Research)는 온체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내 거래소에서 해외 거래소로 이동한 암호화폐 흐름을 집계한 결과, 2021년부터 2026년까지 누적 약 700조 원이 빠져나간 것으로 추산했다. 2025년 유출 규모는 약 168조 원, 2026년은 약 77조 원으로 전망됐다. 다만 이는 식별 가능한 경로만 반영한 수치여서 실제 규모는 더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절대 유출액만 보면 최근 둔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국내 거래대금 대비 해외 순유출 비중을 뜻하는 ‘순유출 강도’는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업비트·빗썸·코인원 등 국내 3대 거래소 현물 거래대금과 비교한 결과, 국내 거래 규모 축소보다 더 빠르게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의미다.

경제적 손실도 적지 않다. 보고서는 자체 방법론을 적용해 국내 투자자가 해외 거래소에서 낸 거래 수수료가 2025년 약 5조 원, 2026년 상반기에만 약 1조40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했다. 국내에서 발생한 디지털자산 수요가 해외 사업자의 매출로 직결되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고객 데이터와 서비스 운영 경험까지 해외에 축적되면서 장기 경쟁력 격차도 확대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해외로 빠져나간 자금이 중앙화 거래소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은 이번 분석의 핵심이다. 보고서는 체이널리시스의 리액터(Reactor)를 활용해 국내 투자자 추정 지갑의 흐름을 추적한 결과, 자금이 개인지갑을 거쳐 탈중앙화 거래소와 예측시장, 크립토 카드 등 다양한 온체인 서비스로 이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에서 충족되지 못한 투자 수요가 글로벌 디지털자산 시장의 여러 영역으로 분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표 사례는 온체인 파생상품이다. 2024년 1월부터 2026년 7월까지 국내 투자자로 식별된 지갑이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 라이터(Lighter) 등 3개 탈중앙화 거래소에 입금한 금액은 누적 2조4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들 플랫폼은 무기한선물 중심의 레버리지 거래를 지원해 국내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파생상품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거래 규모는 더 컸다. 2026년 7월 한 달 동안 하이퍼리퀴드에서 거래한 국내 투자자 추정 지갑 약 1200개의 명목 거래대금은 7조4000억 원에 달했다. 레버리지 특성상 명목 거래대금이 부풀려질 수는 있지만, 월간 기준으로 수조 원대 거래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내 투자자의 온체인 파생상품 참여가 이미 상당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거래 대상 역시 암호화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2026년 1월부터 7월까지 국내 투자자 추정 지갑의 상위 거래 종목에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원유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이 포함됐다. 보고서는 높은 레버리지와 24시간 거래 가능성이 이러한 수요를 자극한 요인으로 봤다. 기존 국내 시장이 제공하지 못하는 투자 기회가 온체인에서 대체되고 있다는 얘기다.

예측시장도 또 다른 유출 통로로 확인됐다. 폴리마켓(Polymarket)에서는 2024년 1월부터 2026년 7월까지 국내 투자자로 추정되는 약 3700개 지갑이 활동했고, 누적 거래대금은 약 6360억 원에 달했다. 특히 2025년 3월부터 6월까지 탄핵과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한국 정치 관련 상품 거래가 급증하며 전체 거래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후에는 국제 정세, 월드컵, KBO, LCK, 서울 날씨 등으로 관심이 분산됐다.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수요도 확인됐다. 레드닷페이(RedotPay), 카스트(KAST), 이더파이, 트리아, 플라즈마 등 주요 크립토 카드 앱의 국내 누적 다운로드는 2026년 7월 말 기준 약 3만8000건으로 추정됐다. 이 가운데 레드닷페이와 이더파이를 온체인으로 분석한 결과, 국내 이용자로 추정되는 지갑은 두 서비스를 합쳐 약 1000개 수준이었다.

특히 2026년 들어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이어가던 시기와 맞물려 카드 충전액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보고서는 환율과 충전 확대의 직접 인과를 단정하진 않으면서도,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단순 보유하는 차원을 넘어 실제 결제로 활용하려는 수요가 반영된 흐름으로 해석했다. 일부 자금은 해외 거래소와 온체인 투자 활동을 거친 뒤 다시 크립토 카드를 통해 소비로 이어진 사례도 포착됐다.

보고서는 이 같은 자금 유출을 되돌릴 ‘골든타임’이 아직 남아 있다고 봤다. 핵심은 국내에서도 파생상품과 온체인 연계 서비스, 스테이블코인 활용 등 변화하는 글로벌 디지털자산 시장 수요를 제도권 안에서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현재처럼 현물 거래 중심 구조가 고착되면 국내 사업자는 새로운 수요를 사업화하지 못한 채 성장 기회를 해외에 내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이미 해외에 머무는 자금이 국내로 복귀할 수 있는 경로도 넓혀야 한다고 제언했다. 트래블룰 확대, 자금세탁방지 규제 강화, 향후 과세 체계 불확실성은 정상적인 자금 환류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필요한 규제는 유지하되 적용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해 불필요한 마찰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로 환류될 수 있는 경제적 가치도 적지 않다. 해외 거래소 수수료만 기준으로 보더라도, 현재 해외에서 발생하는 국내 투자자 거래 일부만 국내 사업자가 흡수해도 수천억 원에서 조 단위 매출 창출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나아가 수탁, 기관 서비스, 결제, 스테이블코인 등 비거래 부문으로 확장할 경우 산업 경쟁력과 세원 기반도 함께 넓어질 수 있다.

이번 분석은 단순한 유출 통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국 투자자의 디지털자산 수요는 줄지 않았고, 오히려 글로벌 디지털자산 시장의 더 넓은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타이거리서치(Tiger Research)는 국내 시장이 이 수요를 제도권 안에서 흡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면 거래 수수료는 물론 데이터, 고객, 사업 경험, 미래 성장 동력까지 해외로 넘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디지털자산’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선 지금이 제도 정비와 시장 확장의 분기점이라는 지적이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많이 본 기사

지금 꼭 알아야 할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