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을 둘러싼 월가의 시선이 다시 달라지고 있다.
올해 초 비트코인 전망을 잇달아 낮췄던 스탠다드차타드가 이번에는 반대로 기존 목표가가 너무 낮을 가능성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의 글로벌 디지털자산 리서치 책임자 제프 켄드릭(Geoff Kendrick)은 최근 투자자 노트에서 “올해 처음으로 연말 전망치인 10만 달러가 너무 낮을 위험이 생겼다”고 밝혔다. 비트코인이 현재 상승세를 이어간다면 지난해 10월 기록한 사상 최고가 약 12만6000달러를 연내 다시 시험할 가능성도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스탠다드차타드가 공식 연말 목표가를 12만6000달러로 상향한 것은 아니다. 기존 10만 달러 전망은 유지한 채 상방 위험이 커졌다고 평가한 것이다.
시장은 불과 며칠 만에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 19일 6만4000~6만5000달러대였던 비트코인은 미국 재무부의 장기 국채 바이백 확대 발표 이후 가파르게 상승해 21일 한때 7만9463달러까지 치솟았다. 주간 상승률은 20%를 훌쩍 넘겼다.
문제는 이번 상승이 단순한 기술적 반등인지, 아니면 지난해 10월 이후 이어진 '암호화폐 겨울'이 끝나는 신호인지다.
켄드릭은 후자에 조금씩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
■ 역대급 숏 스퀴즈… 하락 베팅이 상승 연료로 바뀌었다
이번 급등의 첫 번째 동력은 역설적으로 비트코인 하락에 베팅한 투자자들이었다.
켄드릭은 코인글래스(Coinglass) 데이터를 인용해 최근 비트코인 숏 포지션 청산 규모가 데이터가 집계되기 시작한 2021년 6월 이후 최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가격이 오르면서 숏 포지션이 강제 청산됐고, 이를 정리하기 위한 매수가 다시 가격을 끌어올리는 전형적인 숏 스퀴즈가 발생했다.
시장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규모는 더 커진다.
이번 급등 과정에서 암호화폐 숏 포지션 청산액은 수십억 달러에 달했다. 일부 집계에서는 수요일 이후 43억 달러 이상의 숏 포지션이 청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19일에는 불과 한 시간 사이 10억 달러가 넘는 숏 포지션이 청산되기도 했다.
6주가량 눌려 있던 변동성이 한꺼번에 폭발한 셈이다.
하지만 켄드릭이 주목하는 것은 숏 청산 그 자체보다 숏 청산 이후 무엇이 시장을 이어받느냐다.
강제 매수가 끝난 뒤 새로운 현물 자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급등은 오래가기 어렵다.
이번에는 그 다음 주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 ETF로 16억달러… 숏 스퀴즈에서 ‘현물 매수’로
미국 현물 비트코인 ETF에는 17일부터 20일까지 4거래일 연속 자금이 들어왔다.
17일 2억9750만 달러, 18일 1억8930만 달러, 19일 5억1720만 달러, 20일에는 6억630만 달러가 순유입됐다. 나흘간 총 순유입액은 약 16억1000만 달러에 이른다. 20일 하루 유입액 가운데 약 5억300만 달러가 블랙록의 IBIT에 집중됐다.
켄드릭은 이를 긍정적인 변화로 보면서도 아직 "초기 단계"라는 판단을 내렸다.
과거 강한 상승장에서는 현물 ETF에 하루 1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들어오는 경우가 나타났다. 현재 유입 규모가 이미 크지만 시장이 본격적인 추세 상승으로 전환할 경우 추가 자금이 들어올 공간이 남아 있다는 논리다.
특히 그는 올해 암호화폐가 AI 관련 투자 열풍에 밀리면서 파생상품 시장의 미결제약정(open interest)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라는 점에 주목했다.
쉽게 말해 시장 참여자들이 아직 비트코인에 '몰려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격이 계속 오르면 떠나 있던 자금이 다시 시장으로 들어오면서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 “비트코인은 가격이 오르면 더 사고 싶어진다”
켄드릭은 이런 비트코인의 특성을 장기 투자자에게 일종의 '기펜재(Giffen good)'와 같다고 표현했다.
전통 경제학에서 기펜재는 가격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오히려 증가하는 매우 예외적인 재화를 의미한다. 비트코인이 경제학적으로 엄밀한 의미의 기펜재라는 뜻이라기보다는 가격 상승 자체가 새로운 수요를 불러오는 자산의 특성을 비유한 표현이다.
비트코인 시장에서는 낯설지 않은 현상이다.
가격이 떨어질 때는 투자자들이 더 떨어질 것을 우려해 매수를 미루지만, 가격이 오르면 오히려 "상승장을 놓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매수에 나선다.
즉 주식이나 소비재와 달리 비트코인은 종종 가격 상승이 수요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를 만들어낸다.
이번 ETF 자금 유입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숏 포지션 청산으로 시작된 상승이 ETF를 통한 실제 현물 매수로 연결되고, 다시 가격 상승이 새로운 투자자를 불러들이기 시작하면 랠리의 성격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 2월에는 15만→10만달러 낮췄다… 반년 만에 분위기 역전
이번 발언이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스탠다드차타드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망을 낮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켄드릭은 지난 2월 12일 보고서에서 비트코인 연말 목표가를 기존 15만 달러에서 10만 달러로 낮췄다. 이더리움 전망도 7500달러에서 4000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당시에는 비트코인이 연중 5만 달러 안팎까지, 이더리움은 1400달러 부근까지 떨어질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지난 6월 약 5만9000달러에서 바닥을 형성한 뒤 반등했고, 이번 주에는 7만9000달러 부근까지 회복했다.
켄드릭의 시각도 이에 따라 변하고 있다.
지난 19일만 해도 그는 10만 달러를 연말 목표로 제시하면서 6만5500달러 돌파를 사이클 저점 확인의 핵심 신호로 평가했다. 불과 이틀 뒤에는 10만 달러 자체가 낮은 전망일 가능성을 언급했다.
켄드릭이 염두에 둔 다음 가격은 지난해 10월 6일 기록했던 사상 최고가 약 12만6000달러다.
그는 오는 10월 6일을 전후해 비트코인의 반등이 더욱 탄력을 받을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날은 정확히 1년 전 비트코인이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던 날이다. 이후 약 54%의 고점 대비 하락을 겪었던 만큼, 1년 사이클을 중시하는 투자자들에게는 상징적인 시점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장 시나리오다.
스탠다드차타드가 12만6000달러를 새로운 공식 목표가로 제시한 것은 아니다.
■ 7만달러 아래에는 344만 BTC… 새로운 ‘매수벽’
가격 아래에서는 온체인 구조도 바뀌고 있다.
글래스노드(Glassnode)에 따르면 현재 약 344만 BTC가 5만8000~6만7000달러 구간에 온체인 취득원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약 223만 BTC는 최근 11주 사이 해당 가격대에서 이동하거나 매집된 물량으로, 전체 비트코인 공급량의 약 11%에 해당한다.
글래스노드 공동창업자 라파엘 슐체-크라프트는 이 구간을 현재 가격 아래에서 가장 밀집된 취득원가 영역으로 평가했다.
이는 의미가 있다.
5만8000~6만7000달러에서 비트코인을 매수한 투자자가 많다는 것은 가격이 다시 이 구간으로 내려올 경우 시장 참가자의 행동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특히 비트코인은 이번 상승 과정에서 장기 추세 판단의 핵심 기준인 200일 이동평균선 약 6만8967달러도 회복했다.
온체인 취득원가와 장기 이동평균선이 모두 6만달러 후반에 몰리면서 시장에서는 6만7000~7만달러 부근이 향후 조정 시 중요한 공방 지역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물론 이를 '절대 깨지지 않는 지지선'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온체인 매집 가격은 투자자들이 방어할 수 있는 가격인 동시에, 본전 매물이 쏟아질 수 있는 가격이기도 하다.
■ 세일러의 스트래티지도 다시 수면 위로
이번 비트코인 급등으로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세계 최대 기업 비트코인 보유자인 스트래티지(Strategy)의 비트코인 보유분이 다시 평균 취득가격을 넘어선 것이다.
스트래티지는 현재 84만447 BTC를 보유하고 있다. 총 취득원가는 약 633억6000만 달러, 평균 취득가격은 비트코인당 7만5385달러다. 비트코인이 7만7000달러를 넘어가면서 회사의 비트코인 보유분은 다시 평가이익 구간으로 진입했다.
이는 최근까지 시장의 주요 불안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스트래티지는 지난 3~9일 1690 BTC를 약 1억860만 달러에 매도했다. 평균 매도가격은 6만4262달러로 회사 전체 평균 취득단가보다 낮았다.
매각 자금은 스트래티지의 변동금리 영구우선주인 STRC 약 115만2020주를 재매입하는 데 활용됐다. 회사는 같은 기간 보통주 발행을 통해 6억5310만 달러도 조달해 달러 준비금을 확충했다.
오랫동안 '비트코인을 절대 팔지 않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스트래티지가 실제 BTC를 매도하기 시작하면서 시장에서는 비트코인 국고 전략 자체가 변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이번 가격 반등으로 당장의 압박은 크게 낮아졌다.
독립 애널리스트 윌리엄 클레멘테는 비트코인 가격 상승으로 스트래티지의 BTC 담보 여력이 오히려 다시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퐁 르(Phong Le) 스트래티지 최고경영자도 최근 인터뷰에서 연내 비트코인 매수를 재개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 한국 시장이 봐야 할 것은 ‘10만달러’보다 자금의 성격
국내 투자자에게도 10만 달러라는 숫자는 강력한 심리적 목표가다.
그러나 이번 랠리에서 더 중요한 것은 가격 그 자체보다 누가 비트코인을 사고 있는가다.
첫 단계에서는 숏 포지션 청산이라는 강제 매수가 가격을 끌어올렸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미국 현물 ETF로 실제 투자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세 번째 단계는 가격 상승을 보고 장기 투자자와 신규 자금이 지속적으로 시장으로 돌아오는지 여부다.
한국에서는 여기에 원·달러 환율과 국내외 가격 차이까지 더해진다.
글로벌 비트코인이 상승하면서 원화가 약해질 경우 국내 원화 가격 상승폭은 더 커질 수 있다. 반대로 급등 과정에서 김치프리미엄이 빠르게 확대된다면 글로벌 기관 자금보다 국내 개인의 추격매수가 과열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달러 기준 비트코인의 10만 달러 진입을 앞두고 국내 시장에서 다시 '비트코인 얼마'라는 라운드 넘버가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국내 투자자가 봐야 할 것은 헤드라인의 숫자가 아니다.
ETF 순유입이 계속되는지, 숏 스퀴즈 이후에도 거래량이 유지되는지, 미결제약정이 과도하게 다시 쌓이지 않는지, 그리고 6만7000~7만달러가 실제 새로운 지지선으로 전환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 토큰포스트의 시각: 이번에는 ‘가격’보다 ‘수급 전환’이 중요하다
이번 상승을 단순한 숏 스퀴즈라고 치부하기에는 시장 내부에서 나타나는 변화가 적지 않다.
미국 현물 ETF로 16억 달러가 넘는 자금이 들어왔고, 장기간 위축됐던 시장의 미결제약정은 아직 낮은 수준이다. 200일 이동평균선을 회복했고, 6만달러 후반에는 대규모 온체인 취득원가가 형성됐다.
세계 최대 기업 비트코인 보유자인 스트래티지도 다시 평균 취득가 위로 올라왔다.
여기에 월가의 대표적인 비트코인 강세론자였지만 올해 들어 전망을 계속 낮춰왔던 스탠다드차타드마저 처음으로 "10만 달러가 너무 낮을 수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확인해야 할 것도 있다.
사상 최대급 숏 스퀴즈는 한 번 발생하면 같은 규모로 반복되기 어렵다. 지금까지 상승의 가장 강력한 연료 가운데 하나가 소진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진짜 상승장은 이제부터 확인된다.
강제로 사야 했던 숏 투자자들이 시장에서 사라진 뒤에도, 자발적으로 비트코인을 사려는 돈이 계속 들어오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그렇다'면 스탠다드차타드의 10만 달러 전망은 정말 보수적인 숫자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20% 급등은 또 하나의 강력한 베어마켓 랠리로 기록될 수도 있다.
비트코인의 다음 목표가가 10만 달러인지 12만6000달러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망 보고서가 아니다.
결국 돈의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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