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는 최근 국내 증시에서 반도체 대형주를 집중적으로 팔아치우는 대신 로봇과 인공지능 인프라 관련 종목으로 자금을 옮기며 투자 방향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25일 한국거래소와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기타외국인 포함)는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총 14조4천477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 가운데 SK하이닉스 순매도 규모는 5조3천270억원, 삼성전자는 5조2천587억원으로, 두 종목에서만 10조5천857억원이 빠져나갔다. 전체 순매도의 73%가 이른바 반도체 대표주 두 종목에 몰린 셈이다. 외국인은 코스피가 큰 폭으로 오른 뒤인 지난 7일부터 22일까지 12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갔는데, 이 기간 누적 순매도는 46조3천383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순매도 1위와 2위도 SK하이닉스 19조5천314억원, 삼성전자 18조8천688억원으로 집계돼 전체의 82.9%를 차지했다.
반도체 외 시가총액 상위 종목도 대체로 매도 대상에 포함됐다. 지난 한 주 외국인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다음으로 많이 순매도한 종목은 현대모비스 7천143억원, 현대차 5천953억원, LG전자 3천149억원, 삼성전기 2천934억원 등이었다. 이는 최근 국내 증시 상승을 이끈 핵심 대형주에서 차익 실현이 광범위하게 나타났다는 뜻으로 읽힌다. 주가가 충분히 오른 종목 비중을 줄여 수익을 확정하려는 전형적인 포트폴리오 조정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반면 외국인 자금은 성장 기대가 남아 있는 다른 분야로 이동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두산로보틱스 3천700억원과 삼성에스디아이 1천489억원이었다. 코스닥시장에서는 지난 한 주 동안 1조2천926억원을 순매수했으며, 파두 1천556억원, 서진시스템 1천280억원, 에코프로 1천175억원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두산로보틱스와 파두는 각각 피지컬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 같은 인공지능 인프라 관련주로 분류된다. 삼성에스디아이와 서진시스템도 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의 수혜가 기대되는 에너지저장장치(전기를 저장해 필요할 때 공급하는 설비) 관련 종목으로 거론된다.
이 같은 매수 이동은 인공지능 산업 확장과 맞물린 중장기 기대를 반영한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에스엔이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은 2040년까지 3천330만대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투자가 늘면서 전력 사용량이 함께 증가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에너지저장장치 수요도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이미 많이 오른 반도체주를 줄이는 대신, 아직 주가 반영이 덜 된 인공지능 주변 산업으로 비중을 옮기는 전략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매도가 한국 반도체 업종 전반에 대한 비관론이라기보다 급등 이후 비중 조절에 가까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포트폴리오 안에서 한국 반도체주의 비중이 가파른 주가 상승으로 커지자 매도로 대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실적 개선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주가가 상대적으로 덜 오른 테마주로 자금이 돌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앞으로 6월 초 이전 외국인 순매도 규모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지가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본다. 이 같은 흐름은 단기 차익 실현에 그칠 수도 있지만, 인공지능 관련 수혜 업종으로 외국인 자금 이동이 본격화하는 신호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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