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조원 해외 이동, 가상자산 수요 DEX로 향했다

| 강이안 기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해외로 이동한 자금이 2021년 이후 약 700조원으로 집계됐다. 국내에서 거래하기 어려운 주식 연계 무기한선물과 예측시장 수요가 해외 거래소와 온체인 서비스로 옮겨간 것으로 분석됐다.

12일 웹3 리서치 기업 타이거리서치(Tiger Research)에 따르면, 타이거리서치와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가 국내 투자자로 추정되는 지갑 약 12만개를 추적해 산출한 규모다. 지난해 해외로 빠져나간 금액은 약 168조원이었다.

자금은 해외 중앙화 거래소에만 머물지 않았다. 체이널리시스의 자금 추적 도구 리액터(Reactor)로 흐름을 분석한 결과, 개인 지갑을 거쳐 탈중앙화거래소(DEX)와 예측시장으로 이동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DEX는 중앙화된 운영 주체의 중개 없이 이용자 지갑을 연결해 자산을 거래하는 서비스다. 이용자가 자산을 개인 지갑에 보관한 채 거래할 수 있으며, 일부 플랫폼은 현물뿐 아니라 레버리지 파생상품도 제공한다.

2024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국내 투자자 추정 지갑이 하이퍼리퀴드(HYPE)와 라이터(Lighter) 등 DEX 3곳에 입금한 금액은 누적 2조4000억원이었다. 지난 7월 한 달 동안 하이퍼리퀴드에서 거래한 국내 추정 지갑 약 1200개의 명목 거래대금은 7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입금액보다 명목 거래대금이 큰 것은 증거금에 레버리지를 적용해 거래 규모를 키우는 파생상품 구조와 관련이 있다. 명목 거래대금은 포지션 전체의 계약 가치를 뜻하며 실제 투입한 증거금과는 다르다.

국내 주식 연계 상품도 자금 이동의 한 축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국내 추정 지갑의 상위 거래 종목에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원유 기반 무기한선물이 포함됐다.

한 지갑은 지난 7월 약 10억원을 증거금으로 SK하이닉스 기반 무기한선물에 10배 레버리지 숏 포지션을 구축했다. 숏 포지션은 기초자산 가격이 하락할 때 이익을 얻는 구조지만, 반대로 가격이 오르면 손실이 확대될 수 있다.

무기한선물은 만기일 없이 기초자산 가격 변동에 따라 손익이 정산되는 파생상품이다. 해외 DEX에서는 가상자산뿐 아니라 주식 수익률을 따라가는 상품도 거래돼 정규 거래시간 밖에서 국내 주식의 방향성에 베팅할 수 있다.

고레버리지 상품은 적은 증거금으로 큰 포지션을 구축할 수 있는 반면 가격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 손실과 청산 위험도 커진다. 국내에서 제공되는 상품과 해외 온체인 서비스 사이의 구조적 차이가 투자 수요의 이동 경로를 만든 셈이다.

자금 이탈 속도도 빨라졌다. 타이거리서치가 해외 거래소 순유출액을 업비트·빗썸·코인원 등 국내 3대 거래소 현물 거래대금으로 나눈 ‘순유출 강도’는 상승 흐름을 보였다.

이는 국내 현물 거래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해외로 자금이 이동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의미다. 국내 투자자가 해외 거래소에 지급한 거래 수수료는 지난해 약 5조원, 올해 상반기 약 1조4000억원으로 추정됐다.

예측시장으로 향한 자금도 확인됐다. 2024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폴리마켓(Polymarket)을 이용한 국내 추정 지갑은 약 3700개였고 누적 거래대금은 약 6360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한국 관련 상품 거래대금은 약 896억원으로 집계됐다.

탄핵과 대통령 선거가 이어진 2025년 3월부터 6월까지는 한국 관련 상품이 전체 거래대금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예측시장은 선거나 정책, 사건 결과와 같은 현실의 사안을 거래 대상으로 삼는 시장이다.

이번 자금 흐름은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의 활동 이용자 비율이 20% 아래로 내려간 상황과 맞물린다. 거래 수요 자체가 사라졌다기보다 거래 가능한 상품과 시장 접근성의 차이로 일부 자금이 해외로 이동했다는 해석이다.

조윤성 타이거리서치 선임연구원은 “지금의 자금 유출은 국내에 수요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국내에서 충족하지 못한 시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국내에서 만들어진 수요가 해외 기업의 매출과 경쟁력으로만 이어지는 구조를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관련 수요를 흡수하려면 상품 허용 범위와 투자자 보호 체계를 함께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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