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쓰오일(010950)이 올해 상반기 3431억원의 재고자산 평가손실을 냈다. 1분기 유가 상승기에 재고 관련 이익을 크게 봤지만, 2분기 유가가 빠르게 내려오면서 회계상 손실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21일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에쓰오일은 2026년 반기보고서에서 상반기 재고자산 평가손실이 3431억원이라고 밝혔다. 같은 기간 GS칼텍스의 재고자산 평가손실은 32억원이었다. HD현대오일뱅크는 기존 재고자산 평가손실 70억원을 환입했다.
정유사별 차이는 재고 원가를 계산하는 방식에서 벌어졌다. 에쓰오일은 재고자산 원가를 선입선출법으로 산정한다. 먼저 사들인 원유가 먼저 생산에 투입된 것으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다른 정유사들은 주로 총평균법을 쓴다. 여러 시점에 산 원유 가격을 평균 내 매출원가와 기말 재고원가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유가가 짧은 기간 급변할 때는 선입선출법보다 손익 변동이 완화되는 구조다.
선입선출법은 유가가 오를 때 이익을 키울 수 있다. 과거 낮은 가격에 산 원유가 먼저 매출원가로 잡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고가에 산 원유가 재고로 남은 뒤 유가가 떨어지면 장부가와 시가의 차이가 벌어져 평가손실이 커질 수 있다.
올해 상반기 유가 흐름은 이 구조를 그대로 드러냈다. 두바이유 가격은 중동 지역 전쟁 여파로 3월 말 배럴당 120달러를 웃돌았고, 5월 말에도 100달러를 넘었다. 그러나 6월 말에는 60달러대로 내려왔다.
에쓰오일은 5월 11일 1분기 실적 자료에서 2026년 1분기 매출 8조9427억원, 영업이익 1조2311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회사가 제시한 1분기 재고 관련 효과는 6434억원이었다. 특히 유가 상승이 가팔랐던 3월 한 달에만 약 6000억원의 재고 관련 이익이 발생했다.
이 재고 관련 효과는 회계상 재고자산 평가손익뿐 아니라 저가 재고를 투입하면서 생긴 손익 효과를 포함한 수치로 보인다. 회사는 같은 자료에서 유가가 하락할 경우 재고 관련 손실과 래깅 효과에 따른 영업이익 하방 위험도 언급했다.
래깅 효과는 원유를 사는 시점과 제품을 만들어 파는 시점 사이에 생기는 손익 차이다. 유가가 오르면 과거 가격으로 산 원유를 더 높은 제품 가격에 팔 수 있어 마진이 커진다. 유가가 내려가면 반대 효과가 난다.
결국 에쓰오일의 상반기 손익은 유가 급등기 이익과 급락기 평가손실이 같은 재고 구조 안에서 이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1분기에는 저가 원유 투입 효과가 영업이익을 밀어 올렸고, 6월 말에는 고가 재고의 평가손실이 반영됐다.
전우제 KB증권 연구원은 이달 초 보고서에서 에쓰오일의 2분기 실적과 관련해 "재고 관련 효과가 경쟁사 대비 낮았는데, 선입선출법을 사용해 경쟁사 대비 기초 재고가 높고 기말재고는 낮게 계산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회계 방식이 정유사별 실적 변동 폭을 가른 셈이다.
정유업은 원유 매입과 제품 판매 사이에 시간 차가 생기는 산업이다. 국제유가 방향뿐 아니라 원유 조달 시점, 정제·판매 시점, 재고 평가 방식이 분기 손익에 함께 반영된다. 같은 유가 흐름에서도 회사별 실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이유다.
에쓰오일은 과거 유가 급락기에도 재고 평가손실에 따른 실적 변동이 컸다. 2020년 1분기에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20~30달러대로 떨어지며 재고 관련 손실만 7000억원 넘게 기록했다.
이번 상반기 재고손실은 원유 가격 변동이 정유사의 장부상 손익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반영되는지를 보여준다. 정유사 실적을 볼 때 영업이익 규모뿐 아니라 재고 원가 산정 방식과 유가 변동 시점을 함께 따져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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