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달러 기반 암호화폐 ‘스테이블코인’ 우위에 맞서 유로 표시 스테이블코인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에 선을 그었다. 대신 중앙은행 화폐를 기반으로 한 토큰화 금융 인프라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3일 코인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재는 스페인 로다 데 바라에서 열린 Banco de España 라틴아메리카 경제포럼 연설에서 스테이블코인을 글로벌 금융의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정책 이슈 중 하나로 규정했다. 시장 규모는 6년 전 100억달러 미만에서 현재 3000억달러를 넘어섰고, 이 가운데 약 98%가 달러 표시이며 거의 90%는 테더와 서클이 장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유럽이 달러 스테이블코인 독주에 맞서 유로 스테이블코인을 내세워야 한다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이 통화의 영향력을 넓히는 ‘통화 기능’과 분산원장 기반 결제에서 현금 역할을 하는 ‘기술 기능’을 함께 수행한다고 짚으며, 이 둘을 분리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로 표시 스테이블코인을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스테이블코인 자체가 정말 필요한지부터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GENIUS Act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이 소비자 보호와 금융안정뿐 아니라 달러 패권과 국채 수요를 떠받치는 수단으로도 해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유로 스테이블코인이 일정 부분 유로존 안전자산 수요를 늘리고 국제 사용성을 넓힐 수는 있지만, 금융안정과 통화정책 측면의 부담이 더 크다고 봤다. 그는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당시 서클의 USDC가 33억달러 규모 준비금을 해당 은행에 보유하고 있었고, 이때 USDC가 0.877달러까지 흔들렸던 사례를 들었다.
라가르드 총재는 “액면가 상환의 약속은 시장 신뢰에 달려 있고, 그 신뢰는 금융안정이 흔들리면 빠르게 사라진다”고 말했다. 또 예금이 비은행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한 뒤 은행으로 돌아올 경우 ECB의 금리 결정이 금융시스템에 덜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로존에서는 은행이 실물경제 자금공급의 중심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유럽의 대응 방향으로 자본시장 통합과 공공 인프라 구축을 제시했다. 그는 유럽 저축·투자연합(Savings and Investments Union)을 통해 자본시장을 더 깊게 묶고, 유로의 국제적 위상에 맞는 안전자산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토큰화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 그는 DLT 기반 시장 인프라가 유럽처럼 시장이 파편화된 지역에 특히 유용하다고 봤다. 2023년 기준 EU에는 295개 거래소와 14개 중앙청산소, 32개 중앙예탁기관이 있었지만, 미국은 청산소 2곳과 중앙예탁기관 1곳에 불과하다고 비교했다.
ECB는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공공 결제 인프라를 준비하고 있다. 9월부터는 ‘폰테스(Pontes)’ 프로젝트를 통해 DLT 플랫폼과 TARGET를 연결해 중앙은행 화폐로 도매 결제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 3월 공개된 ‘아피아(Appia)’ 로드맵은 2028년까지 완전한 상호운용형 유럽 토큰화 금융 생태계를 목표로 하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유럽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다”며 “다른 곳에서 만든 도구를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혁신의 이익은 살리고 취약성은 들여오지 않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발언은 달러 스테이블코인 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ECB가 ‘유로 스테이블코인 경쟁’보다 토큰화 금융 인프라와 중앙은행 화폐의 역할 확대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총 암호화폐 시가총액이 2조6400억달러 수준까지 올라온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 규제와 결제 인프라 경쟁은 앞으로도 유럽 금융정책의 핵심 변수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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