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의 ‘클래리티 법안(CLARITY Act)’ 처리가 지연될 경우, 암호화폐 시장 규제 공백이 2030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제도 불확실성이 길어질수록 기관 자금은 미국을 떠나 다른 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신시아 루미스(Cynthia Lummis) 상원의원은 최근 “클래리티 법안이 이번 회기 내 통과되지 않으면, 미국은 사실상 2030년까지 포괄적 암호화폐 규제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안 통과에 실패할 경우 2026년 선거 일정으로 의회 일정이 크게 줄어들고, 다음 입법 기회는 차기 의회 이후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이는 단순한 정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시장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시간 리스크’로 작용한다.
현재 미국은 명확한 법률 대신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집행과 소송을 통해 암호화폐 시장을 관리해왔다. SEC는 2017년 DAO 보고서 이후 ICO 단속, 리플(XRP), 코인베이스 소송 등으로 사실상 규칙을 만들어왔지만, 이는 사후적 기준이라는 한계가 있다.
이 같은 구조는 “무엇이 금지되는지는 알 수 있지만, 무엇이 허용되는지는 알 수 없는” 비대칭 불확실성을 만든다. 블랙록, 피델리티, JP모건 같은 대형 기관에게 이는 수용 불가능한 환경이다.
문제는 이 규제 공백이 실제 자금 흐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명확한 법적 기준이 없으면 기관 내부 컴플라이언스 기준을 충족할 수 없어 거래 데스크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
거래 인프라가 없으면 수탁 서비스도 구축할 수 없고, 결국 시장 유동성이 형성되지 않는다. 이 자금은 자연스럽게 규제가 정비된 지역으로 이동한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MiCA(암호자산시장법)’를 도입해 2024년부터 시행에 들어갔고, 2025년까지 전면 적용을 완료했다. 단일 라이선스로 27개 회원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구조는 기관 투자자에게 높은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
싱가포르는 ‘결제 서비스법’을 기반으로 JP모건, DBS, 테마섹이 참여하는 ‘프로젝트 가디언’을 통해 토큰화 시장을 적극 실험 중이다. 두바이는 VARA 규제를 통해 바이낸스, OKX, 바이비트 같은 주요 거래소를 유치했다.
반면 미국은 여전히 소송 중심 접근에 머물러 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이미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예측 플랫폼에서는 2026년 내 법안 통과 확률을 50%대 중반 수준으로 보고 있으며, 기관 투자자들은 이를 헤지하기 위해 CME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선물과 해외 파생상품 시장으로 자금을 이동시키고 있다.
이는 미국 현물 시장의 유동성이 유럽과 아시아 파생상품 시장으로 분산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즉, 법안이 통과되기도 전에 시장 영향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클래리티 법안의 핵심은 디지털 자산을 증권과 상품으로 구분하는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또한 네트워크 탈중앙화 수준에 따라 자산 성격이 변경될 수 있는 인증 체계를 포함하고 있으며, 거래소 파산 시 고객 자산 보호 규정도 담고 있다.
해당 법안은 위원회를 15대 9로 통과했지만, 본회의 표결 일정 확보가 최대 변수로 남아 있다.
현 상황에서는 특정 토큰이 증권인지 여부가 법원이 아닌 이상 명확히 판단되지 않기 때문에, 기관들은 법적 리스크를 감수하거나 시장 참여를 포기해야 하는 선택에 놓인다. 대부분은 후자를 택하고 있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대해 은행 수준의 자본 및 자금세탁방지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규제 방향에 대한 의견 차이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법적 틀 자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인식이다.
결국 클래리티 법안은 단순한 입법이 아니라,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에서 미국의 주도권 유지 여부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고 있다. 법안 지연이 장기화될수록, 시장 중심축은 이미 규제를 정비한 지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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