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이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논의에 대비해 호주와 영국 연금시장 운영 사례를 점검하고 그룹 차원의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3일 지난해 호주와 영국의 퇴직연금 기금, 자산운용사 등을 직접 방문해 기금형 퇴직연금의 지배구조와 자산운용, 가입자 관리 체계를 살폈다고 밝혔다. 방문 기관은 호주 10곳, 영국 6개 기금이다.
이번 벤치마킹은 국내 퇴직연금 제도 개편 논의와 맞물려 있다. 고용노동부는 2월 6일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TF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와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국내 퇴직연금은 그동안 금융회사가 기업과 계약을 맺고 적립금을 관리하는 계약형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제도 개편 논의에서는 기존 계약형을 유지하면서 별도 기금이 적립금을 모아 운용하는 기금형을 함께 두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정부가 검토하는 기금 유형에는 금융기관 개방형, 연합형, 공공기관 개방형 등이 포함된다. 핵심은 적립금 운용 주체와 의사결정 구조를 어떻게 설계해 가입자 이익을 우선할 수 있게 하느냐다.
하나은행이 호주에서 본 핵심은 장기 분산투자와 성과관리 체계다. 호주는 퇴직연금을 장기간 축적하는 자산으로 보고 주식과 채권뿐 아니라 부동산, 인프라 등에 나눠 운용한다.
호주 건전성감독청(APRA)은 '퍼포먼스 테스트'를 통해 기금별 운용성과를 평가한다. 성과가 부진한 기금에는 개선 요구나 신규 가입 제한 조치를 취한다.
영국에서는 계약형과 기금형이 함께 경쟁하는 구조와 독립 거버넌스가 확인됐다. 여러 사업장이 하나의 기금에 참여하는 '마스터 트러스트'는 독립적인 트러스티 이사회가 운영과 주요 의사결정을 맡는다.
영국은 투자성과만 따지지 않고 비용과 서비스 수준까지 함께 보는 '밸류 포 머니' 체계도 운용한다. 운용 수익률뿐 아니라 가입자가 부담하는 비용과 제공받는 서비스의 질을 종합적으로 비교하는 방식이다.
하나은행은 현지 조사 내용을 하나금융 관련 계열사와 공유하고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에 필요한 역량과 대응 방향을 논의하는 회의체도 운영 중이다.
회의체의 논의 대상은 장기 자산운용, 독립적 거버넌스, 전문 운용체계, 성과평가, 가입자 관리 등이다. 해외 사례를 국내 제도에 그대로 옮기기보다 국내 퇴직연금 구조에 맞는 적용 방식을 찾는 과정으로 풀이된다.
기존 퇴직연금 사업에도 일부 변화가 반영되고 있다. 하나은행은 로보어드바이저 일임운용 서비스와 전문가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하나MP 구독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연금 전문 상담센터인 '연금 더드림 라운지'도 지방으로 확대하고 있다. 성과가 부진한 디폴트옵션 상품을 변경하는 등 사후관리도 강화했다.
퇴직연금 시장에서는 상품 선택과 계좌 운용 방식도 함께 바뀌고 있다. 본지는 앞서 퇴직연금 계좌로 개인투자용 국채 10년물과 20년물에 청약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확정기여형(DC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가 대상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호주와 영국 모두 가입자의 노후자산을 장기간 축적하고 전문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제도와 운용체계를 지속적으로 보완해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며 "국내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방향에 맞춰 필요한 역량을 선제적으로 준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금형 퇴직연금이 국내에 어떤 형태로 도입될지는 제도화 과정에서 정해진다. 현재 확인된 쟁점은 계약형과 기금형의 병행, 금융기관 개방형과 연합형 등 기금 유형, 가입자 이익을 우선하는 지배구조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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