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억대 제이알글로벌리츠, 영국 소송 패소

| 김하린 기자

제이알글로벌리츠가 브뤼셀 파이낸스타워 감정평가를 둘러싼 영국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6000억원대 채무조정 협상이 본격화됐다.

영국고등법원 상사법원은 한국시간 9일 대주단의 현금유보 조치인 ‘캐시트랩’ 발동 근거가 된 9억2000만유로 감정평가를 대출약정상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평가 과정에 미흡한 점은 있었지만 대주단이 특정 결과를 강요했거나 존스랑라살(JLL)이 독립성을 잃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소송은 대주단이 선임한 JLL이 브뤼셀 파이낸스타워 가치를 9억2000만유로로 평가하면서 시작됐다. 이 평가액을 기준으로 산출한 담보인정비율(LTV)이 대출약정상 기준인 52.5%를 넘자 현지 임대수익을 국내로 이전하지 못하는 캐시트랩이 발동됐다.

캐시트랩은 대출약정상 담보인정비율 등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임대수익을 차입자에게 지급하지 않고 별도 계좌에 유보하는 조치다. 부동산 담보대출에서 현금흐름을 통제해 대주단의 회수 가능성을 높이는 장치로 활용된다.

제이알글로벌리츠 측은 대주단이 감정평가 과정에 개입해 자산가치를 낮췄다고 주장하며 대리금융기관인 CBRE 론 서비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일부 대주단이 9억5000만유로 이하의 평가를 원했고 JLL이 평가 막바지에 이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인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특정 평가액을 산출하도록 부당한 압력이 가해졌거나 JLL이 편향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계약상 요구되는 평가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JLL의 평가 방식도 비판했다. 현금흐름할인법을 활용한 교차검증이 형식적이었고 일부 쟁점에 충분히 답하지 않았으며, 평가 담당자가 업무 결과의 중대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미흡함만으로 감정평가를 계약상 무효로 볼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평가의 완성도가 높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사전에 특정 결과를 만들기 위해 조작된 평가로 볼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패소에 따라 제이알글로벌리츠의 변제 일정은 늦어진다. 회사가 제시한 계획에 따르면 승소 시 2027년 3월 이자, 6월 원금 상환을 시작하지만 패소 시 파이낸스타워 담보대출을 리파이낸싱한 뒤인 2027년 12월부터 원리금을 갚게 된다.

자금 조달 부담도 커진다. 미국 맨해튼 오피스 매각대금 1446억원은 승소 시 일부만 벨기에 자산 상환에 투입할 수 있었지만, 패소 시 전액을 현지 선순위대출 상환에 사용해야 한다.

2027년 리파이낸싱 과정에서 추가로 조달해야 할 금액은 1710억원에서 2837억원으로 늘어난다. 회사가 2027년 파이낸스타워 감정가를 11억유로로 가정한 만큼, 이 평가를 전제로 한 리파이낸싱 계획도 채권자 협상에서 검증 대상이 될 전망이다.

환헤지 부담은 줄었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4일 제이알제26호리츠와 제이알제28호리츠의 환헤지 거래 일부를 조기 종료하면서 관련 채무가 회생 신청 당시 약 1650억원에서 현 환율 기준 약 443억원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국내 회생절차에서는 서울회생법원이 삼일회계법인을 조사위원으로 선임했다. 조사위원은 제이알글로벌리츠의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은지, 회생절차 진행이 적정한지, 회사가 제시한 5년 변제계획을 이행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중간보고서 제출기한은 28일이다. 서울회생법원은 회사와 채권자의 자율구조조정지원(ARS) 기간을 14일까지 연장한 상태다.

이정엽(Lee Jung-yeop) 법무법인 로집사 대표는 “개시 전 조사는 회사를 회생시키는 것보다 청산하는 편이 나은지를 확인하는 절차”라며 “자율 협의만 계속 기다리기 어렵다는 판단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회생 개시 여부를 판단하기 전 기업가치와 채무조정 가능성을 따져보는 절차라는 설명이다.

제이알글로벌리츠의 채무는 회생 신청 당시 채권자목록 기준으로 환헤지 관련 채권 약 1650억원, 공모 회사채 3210억원, 사모사채 592억원, 여신대출 554억원 등 6000억원을 웃돈다. 소액주주는 지난해 말 기준 2만8000여명이며 미지급 배당금 227억원의 채권자이기도 하다.

영국 소송은 마무리됐지만 회사가 제시한 5년 변제계획을 채권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남은 절차의 핵심이다. 삼일회계법인은 28일까지 중간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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