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소프트웨어 산업을 뒤흔들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그 진짜 충격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2850억 달러(약 410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소프트웨어 주가 폭락이 대표적이다. 투자자들이 AI로 인한 소프트웨어 판의 재편을 일종의 ‘멸종 이벤트’로 과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이 붕괴가 아닌 구조적 재편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분석한다.
이번 사태의 핵심에는 애트로픽과 오픈AI의 행보가 있다. 두 AI 기업은 단순 API 서비스를 넘어 상위 소프트웨어 계층까지 공략하면서 기존 SaaS 기업의 핵심 영역까지 손을 대고 있다. 애트로픽은 최근 클로드 코워크에 법률용 플러그인을 탑재해 토머스로이터, 렉스, 그리고 리걸줌 주가를 폭락시켰고, 오픈AI는 코드엑스 데스크톱 앱을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다.
시장 반응은 단편적이었다. 세일즈포스, 서비스나우, 리걸줌 같은 각기 다른 구조의 SaaS 기업들이 유사한 충격을 받으며 일괄 하락했다. 그러나 더큐브 리서치의 파트너 라파엘 도르나노는 이러한 반응이 본질을 외면한 '분석 부족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핵심은 해당 SaaS가 ‘기록의 시스템(System of Record)’인지, 단순히 ‘워크플로우 래퍼(Wrapper)’에 불과한지를 가르는 데 달려있다고 진단한다.
플러그인 하나로 대체 가능한 워크플로우 래퍼들은 AI 모델 개발사에게 바로 위협이 된다. 반대로 기업에 수십 년간 쌓인 운영 데이터를 보유하고, 기업 시스템에 깊숙이 통합된 기록의 시스템은 단기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이 AI 시대에 ‘행동의 시스템(System of Action)’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시장의 평가절하가 근거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사용자 인터페이스 기반의 에이전트가 등장하면서 API 기반 통제가 점차 무력화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 과정에서 진정한 시스템 전환은 ‘어떻게’가 아니라 ‘무엇을’ 할지를 아는 에이전트의 등장 여부로 결정된다. 승인 경로, 예외 처리 같은 구체적 맥락을 아우르는 조율 능력이 향후 경쟁력의 기준이 된다는 분석이다.
AI 모델 기반 기업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애트로픽과 오픈AI 같은 AI 연구소들은 모델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구조적 ‘잠금(lock-in)’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 플랫폼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모델 간 기술 격차는 줄어들고 있지만, 수십 년간 축적된 기업 문맥과 업무 흐름을 단기간에 복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번 주가 폭락은 AI가 단지 SaaS 산업을 파괴하고 있다는 공포심에서 빚어진 과도한 반응이라는 지적이 많다. 현실은 오히려 기록의 시스템이 행동의 시스템으로 진화할 수 있느냐의 전환 국면에 가까우며, AI 기업과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 모두 같은 시장 지배력 확보를 목표로 상반된 방향에서 접근 중인 상황이다. 이 전환의 승자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투자자들에게는 지금이 가장 정밀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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