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도비 2026 서밋은 단순한 신제품 발표 자리를 넘어 회사의 방향 전환을 분명히 보여준 무대였다. 샨타누 나라옌 최고경영자(CEO)의 마지막 키노트와 함께, 어도비는 생성형 AI를 넘어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틱 AI’ 시대를 공식화했다.
나라옌은 이번 발표에서 AI가 사람을 돕는 수준을 넘어 고객 발굴, 여정 설계, 브랜드 노출 최적화 같은 다단계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핵심은 어도비 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은 하루 35조 건의 세그먼트 평가를 처리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AI 에이전트가 단순한 명령 수행이 아니라 고객의 전체 이력을 반영한 맥락 중심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키노트의 중심 주제는 생성형 AI에서 ‘에이전틱 엔터프라이즈’로의 이동이었다. 생성형 AI가 프롬프트에 맞춰 콘텐츠를 만드는 데 강점이 있다면, 에이전틱 AI는 복수의 비즈니스 목표를 순차적으로 실행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도비는 이를 위해 어도비 CX 엔터프라이즈를 소개했고, 전문화된 AI ‘동료’들이 고객 후보를 찾고 마케팅 여정을 조율하며 브랜드 가시성을 높이는 기능을 맡게 된다고 밝혔다.
나라옌은 “도구가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창작한다”면서도, 이제 경쟁력은 더 많은 콘텐츠가 아니라 ‘브랜드에 맞고’, ‘대규모로 확장 가능하며’, ‘개인화된 방식’으로 전달되는 적절한 콘텐츠를 만드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어도비가 그동안 강점으로 내세워온 영역이며, AI가 이를 더 빠르게 실행하게 해준다는 의미다.
키노트에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등장했다. 두 사람은 엔비디아의 ‘옴니버스’를 포함한 디지털 트윈 전략을 논의하며, 제조와 물류 같은 산업에서 AI가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려면 현실 세계를 정밀하게 반영한 디지털 복제본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황은 앞으로의 컴퓨팅 모델이 인간의 아이디어 ‘씨앗’을 기반으로, 생성형 AI가 고객 맥락에 맞게 콘텐츠를 가공하고 설명하며 시각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물리 세계와 디지털 AI의 결합이 단순 자동화를 넘어 산업 운용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시각으로 읽힌다.
나라옌과 데이비드 와드와니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사업부문 사장은 AI로 생성된 획일적 콘텐츠, 이른바 ‘AI 슬롭’과 ‘동일함의 바다’ 속에서 브랜드가 살아남으려면 차별화된 창의성이 더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어도비는 앞으로 2년 동안 콘텐츠 수요가 5배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에이전트를 공개했다.
이 도구는 전략 브리프를 크리에이티브 브리프로 바꾸고, 필요한 에셋을 찾으며, 포토샵의 ‘Rotate Object’ 같은 복잡한 편집도 몇 초 만에 수행하는 구조다.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작업을 자동화해 사람이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통찰’에 집중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AI가 만든 콘텐츠가 급증하면 ‘환각’이나 브랜드 기준 이탈 문제도 커질 수밖에 없다. 어도비는 이를 통제하기 위해 어도비 브랜드 인텔리전스를 공개했다. 이 시스템은 기업의 과거 승인·반려 이력과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학습해, 사람이 만들든 AI가 만들든 모든 결과물이 기준에 맞는지 점검한다.
이는 최고정보책임자(CIO)와 보안 책임자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다. 프롬프트 기록은 어떻게 남길지, 학습 데이터와 추론 데이터는 어떻게 관리할지, 그리고 여러 채널에서 움직이는 AI 에이전트가 동의와 개인정보 보호 정책을 어떻게 준수할지 같은 문제가 함께 제기되기 때문이다. 결국 에이전틱 AI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기업 내부의 자체적인 AI 거버넌스 체계도 함께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AI 확산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인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도 어도비와 엔비디아는 방어 논리를 분명히 했다. 황은 방사선 전문의를 사례로 들며, AI가 스캔 판독 정확도를 높였지만 결과적으로 의사 수요는 줄지 않았고 오히려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며 고차원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창작자와 엔지니어 역시 같은 흐름에 놓여 있다고 봤다.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실험과 반복 속도가 빨라지고, 결국 더 많은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 관점에서 보면 어도비의 에이전틱 AI 프레임워크는 여러 AI 모델과 에이전트, 분석과 최적화 결과를 조율하는 ‘워크플로’ 역할을 하게 된다. 승자는 마케터나 디자이너, 데이터 과학자를 줄이는 기업이 아니라, 이들에게 더 정교한 AI ‘세컨드 오피니언’을 쥐여주는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나라옌은 이번 키노트에서 업계가 여전히 생성형 AI와 에이전틱 AI 시대의 ‘초기 국면’에 있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경영진은 단순히 기능을 시험 도입하는 수준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경험 중심 구조로 비즈니스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지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CIO와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완벽한 실행 지침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으며, 실시간 개인화와 실험, AI 보조 워크플로를 더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 리더에게는 AI 중심의 경험 혁신을 단기 예산 항목이 아닌 ‘다년간의 플랫폼 전환’으로 다뤄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샨타누 나라옌의 18년 CEO 재임은 대형 소프트웨어 기업의 전환 사례 가운데서도 성공적인 편에 속한다. 그는 패키지형 소프트웨어 판매에서 구독형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모델로 회사를 옮겨 놓았고, 초기에는 주가 부담이 있었지만 이후 시가총액을 약 20배 키우는 성과로 이어졌다.
또 옴니추어와 마케토 같은 대형 인수를 통해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 중심의 회사를 익스피리언스 클라우드 기업으로 확장했다. 그 결과 어도비는 디자이너용 소프트웨어 업체를 넘어, 글로벌 대기업의 고객 경험을 다루는 핵심 플랫폼 사업자로 자리 잡았다.
이번 어도비 서밋은 단순한 제품 공개를 넘어, 회사가 앞으로 어디에 베팅할지 보여준 무대였다. ‘에이전틱 AI’와 데이터, 거버넌스, 창의성을 하나의 구조로 묶겠다는 전략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다만 나라옌의 마지막 발표는 어도비가 다음 경쟁의 중심을 여전히 ‘경험’에서 찾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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