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셰브런이 마이크로소프트가 텍사스주 서부에 짓는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에 20년 동안 전력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에너지 기업과 빅테크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새로운 전력 조달 방식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번 계약의 핵심은 지역 전력망에 기대지 않는 전용 발전 설비다. 셰브런은 22일 현지시간 기준 발표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 데이터센터 단지에 천연가스 발전으로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시설은 미국 내 데이터센터 사업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대형 프로젝트로, 완공 뒤 예상 전력 수요가 2.7기가와트에 이른다. 이는 약 200만 가구가 사용하는 전기량에 맞먹는 수준이다. 셰브런은 퍼미안 분지에서 조달한 천연가스를 활용해 데이터센터 전용 발전소를 세우고, 2028년부터 전력 공급에 들어간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데이터센터 전용의 온사이트 발전 방식을 택한 배경에는 전력요금과 지역사회 반발 문제가 깔려 있다. 미국에서는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전력망 부담을 키우고, 그 비용이 일반 가정의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셰브런이 추진하는 이 발전소는 현지 주민이 쓰는 전력망과 분리된 구조로 운영될 예정이어서, 적어도 설계상으로는 지역 전력비용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계산이 담겼다. 회사 측은 향후 여유 전력이 생기면 이를 다시 지역 전력망에 보내 전력 안정성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 측면에서 보면 이번 계약은 인공지능 확산이 전통 에너지 기업의 새 수익처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인공지능 인프라 운영 기업들은 탄소배출 감축을 이유로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조달을 선호해 왔다. 하지만 데이터센터는 서버를 24시간 멈추지 않고 돌려야 하는 특성상, 날씨나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질 수 있는 전원만으로는 운영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전력을 끊김 없이 공급할 수 있는 천연가스 발전이 다시 현실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셰브런과 엑손모빌 같은 오일 메이저들이 이 분야에 속도를 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사업은 퍼미안 분지의 가스 수급 문제와도 연결된다. 퍼미안 분지는 미국 최대 산유지로 꼽히는데, 최근 원유 생산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부산물처럼 나오는 천연가스도 함께 급증했다. 문제는 파이프라인 등 운송 인프라가 이를 충분히 받아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현지 업체들이 가스를 제값에 팔지 못하거나, 오히려 비용을 들여 처분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실제로 최근 몇 달간 퍼미안 지역의 가스 가격 지표인 와하 허브 가격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이런 공급 과잉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셰브런으로서는 데이터센터라는 대형 고정 수요처를 확보함으로써 남는 가스를 소화하고 가격 불안을 줄일 수 있는 셈이다.
결국 이번 계약은 인공지능 투자 확대, 전력망 부담 논란, 천연가스 공급 과잉이라는 세 가지 흐름이 한 지점에서 만난 사례로 볼 수 있다. 앞으로도 미국에서는 대형 데이터센터가 지역 전력망과 분리된 자체 발전 설비를 갖추는 방식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전력 안정성과 비용 측면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 기반 전력 확대가 탄소감축 목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는 계속 논쟁거리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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