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기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기업 옴니아는 직원의 창업을 막는 대신 공개적으로 지원하는 새 펀드를 내놨다. 장기 근속 직원이 회사를 떠나 창업할 경우 초기 자금과 사무공간, 경영진 코칭까지 제공하는 구조로, 전통적인 벤처 투자 모델과 기업 인재 운영 방식에 동시에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옴니아는 유럽 엔젤 펀드 파이어드롭과 손잡고 ‘옴니아 퓨처 파운더스 펀드’를 출범했다. 대상은 근속 5년을 채운 직원이다. 자격 요건을 갖춘 직원은 옴니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 벤 프리먼(Ben Freeman)과 파이어드롭 창업자 피에트로 인베르니치(Pietro Invernizzi)에게 30분 동안 사업 아이디어를 발표할 수 있고, 투자 여부는 24시간 안에 통보된다.
선정되면 시드 자금 25만달러를 받는다. 원화로는 약 3억8770만원이다. 여기에 전용 업무 공간과 운영 지원, 옴니아 경영진의 지속적인 코칭도 더해진다. 단순한 사내 복지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아니라, 실제 창업 전환을 염두에 둔 ‘첫 번째 수표’ 성격이 강하다.
이 펀드의 특징은 초기 창업자가 가장 부담을 느끼는 가격 책정과 지분 협상을 최대한 단순화했다는 점이다. 옴니아는 1000만달러 기업가치를 기준으로 25만달러를 투자하는 대략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 경우 지분 2.5% 수준이다.
다만 이를 고정 규칙으로 못 박지는 않았다. 창업자는 ‘캡도 없고 할인도 없는’ SAFE 방식도 선택할 수 있다. 우선 25만달러를 받고, 정확한 기업가치와 최종 지분율은 다음 주요 투자 라운드에서 정하는 구조다. 초기 아이디어 단계에서 지나치게 복잡한 협상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설계한 것이다.
프리먼은 이 기준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려주는 ‘출발점’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지분 2.5%는 지나친 희석 부담을 만들지 않으며, 이후의 성장과 자금 조달은 창업자 역량에 달렸다는 판단이다.
옴니아가 이 제도를 만든 핵심 배경은 사내에서 창업 의지를 숨긴 채 ‘사이드 허슬’을 이어가는 문화를 줄이기 위해서다. 통상 창업을 꿈꾸는 직원은 현재 직장에 알리지 못한 채 외부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본업과 새 사업 모두에 어색함과 비효율을 낳을 수 있다.
옴니아는 이 문제를 ‘투명성’으로 풀겠다는 입장이다. 직원이 리더십과 공개적으로 창업 계획을 논의하고, 퇴사 시점과 사업 준비 일정을 정리하며, 보다 깔끔하게 전환하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회사와 직원이 서로 눈치만 보는 대신, 창업을 하나의 자연스러운 커리어 경로로 인정하겠다는 메시지에 가깝다.
자금 조달 구조도 눈에 띈다. 이 펀드는 전통적인 기관 자본보다 150명 이상의 엔젤 투자자, 테크 창업자, 임원들이 개별적으로 참여한 자금 풀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네트워크에는 스트라이프 전 최고운영책임자 클레어 휴스 존슨(Claire Hughes Johnson), 아사나 전 최고운영책임자 앤 레이몬디(Anne Raimondi), 사나 최고경영자 조엘 헬레르마르크(Joel Hellermark), 와이즈 최고기술책임자 하쉬 신하(Harsh Sinha) 등 글로벌 테크 업계 인사들이 포함됐다.
프리먼은 이들이 단순한 수익 목적보다 다음 세대 창업자를 돕고 생태계에 환원하려는 의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옴니아는 동시에 파이어드롭과 협력해 펀드 운영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아이디어 구상 단계의 창업자까지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췄다.
아직 이 프로그램을 통해 공식적으로 창업에 나선 직원은 없다. 옴니아 설립이 약 4년 반 전이어서 첫 5년 근속 대상자가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미 직원 4명이 장래에 이 프로그램을 활용해 창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가운데 2명은 창업 경험이 있고, 2명은 첫 창업자다. 프리먼은 이들의 이력만 봐도 외부 자금 조달이 아주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 펀드의 목적이 단순히 자금 공백을 메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옴니아는 이 펀드를 인재 전략의 일부로도 보고 있다. 미래에 창업을 꿈꾸는 인재라면, 자신이 언젠가 회사를 떠나 창업하더라도 이를 지원해 주는 조직에 더 끌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현재 런던과 뉴욕에 걸친 옴니아 인력은 약 200명이며, 이 중 약 15%가 전직 창업자 출신인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는 초기에 50명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1만명 넘는 지원자를 인터뷰할 정도로 채용 기준을 높게 유지해 왔다. 옴니아는 큰 조직이 된 뒤에야 이런 제도를 만들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초기 스타트업 환경이 뛰어난 창업자를 키우는 토양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내부 운영 방식도 창업자형 인재에 맞춰져 있다. 조직은 비교적 평평한 구조를 지향하고, 제품 관리자와 엔지니어, 영업·시장 조직이 각자 높은 자율성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옴니아가 원하는 인재상은 안정적인 관리형 인력보다 문제 해결에 집요하고 불확실성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프리먼이 이런 모델을 구상한 배경에는 자신이 초기 멤버로 몸담았던 이메일 보안 기업 테시안 경험이 있다. 그는 테시안을 떠나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고립돼 있었다고 돌아봤다. 기존 동료들이 엔젤 투자자로 도와주긴 했지만, 퇴사 절차부터 자금 조달, 투자설명자료 준비까지 체계적인 지원은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실제로 ElevenLabs 공동창업자 피오트르 돔코프스키(Piotr Dabkowski)를 비롯해 여러 창업자가 테시안 출신이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유능한 인재가 창업으로 옮겨가는 흐름은 막을 수 없는 만큼 더 쉽게 도와주는 편이 낫다고 봤다.
프리먼은 핵심 인재 유출 우려에도 선을 그었다. 정말 창업할 사람은 결국 떠나게 되며, 그렇다면 회사를 등지는 방식보다 우호적인 관계 속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편이 더 낫다는 논리다. 그는 이 프로그램이 자선이 아니라 뛰어난 오퍼레이터에 대한 장기 투자라고 강조했다.
결국 옴니아의 실험은 단순한 사내 펀드 신설을 넘어선다. 직원 창업을 ‘배신’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커리어 확장으로 보고, 이를 통해 더 강한 동문 네트워크와 미래 투자 기회를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인재 이동이 갈수록 빨라지는 만큼, 이런 모델이 다른 테크 기업으로 확산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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