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금융관리국(HKMA)이 양자컴퓨팅 위협에 대한 은행권 대비 수준을 점검하는 새 프레임워크를 내놨다. 토큰화 예금, 디지털 자산, 블록체인 결제가 빠르게 확산하는 가운데 암호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를 제도화한 셈이다.
HKMA는 11일 양자 대비 백서와 함께 업계 첫 ‘양자 대비 지수(QPI)’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 기관들의 평균 준비도는 10점 만점에 2.3점에 그쳤고, 절반가량은 포스트 양자 암호(post-quantum cryptography) 대응 계획조차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HKMA는 2030년까지 금융권 전체의 준비도를 10점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번 조치는 홍콩이 전통 금융을 분산원장 기반으로 옮기는 속도를 높이는 흐름과 맞물린다. 홍콩 정부에 따르면 2023년 이후 토큰화 녹색채권은 3차례 발행됐고, 발행 규모는 약 168억 홍콩달러(약 21억 달러)에 이른다. HKMA는 ‘프로젝트 앙상블(Project Ensemble)’을 통해 토큰화 예금과 디지털 자산 결제도 추진하고 있다.
HKMA 백서는 분산원장과 결제망이 핵심 기능을 암호기술에 의존하는 만큼, 보호 장치가 무너질 경우 금융 시스템 전반이 심각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쇼어 알고리즘(Shor’s algorithm)을 대규모로 돌릴 수 있는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 RSA와 타원곡선암호(ECC)가 깨질 수 있어, 거래 서명과 신원 검증, 데이터 보호가 동시에 위협받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응 사례도 소개됐다. 조사에 참여한 한 기관은 분산원장 연결에 포스트 양자 암호를 적용하는 개념검증을 마쳤고, HSBC는 2024년 양자 안전 기술을 활용해 토큰화 금을 분산원장 간 이동시켰다.
홍콩의 토큰화 전략은 양자 위협의 무게를 더 키우고 있다. HKMA는 2025년 ‘핀테크 2030’ 전략에서 토큰화를 4대 축 중 하나로 넣었고, 40개가 넘는 세부 과제를 추진 중이다. 여기에 실물자산(RWA) 토큰화 확대, 토큰화 국채의 정례 발행, 토큰화 교환기금 증권 검토까지 더해지며 블록체인 기반 결제와 정산 비중은 계속 커질 전망이다. e-HKD, 토큰화 예금, 규제된 스테이블코인도 이 구조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거론된다.
폴 찬 홍콩 재무장관은 지난 2월 11일 연설에서 지난해 말 홍콩 은행권이 보관 중인 디지털 자산 규모가 140억 홍콩달러(약 17억85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약 180% 증가했다고 밝혔다. 같은 시점 토큰화 예금도 290억 홍콩달러(약 37억 달러)까지 늘었다.
결국 HKMA의 이번 조치는 토큰화 금융의 확산이 곧 암호 인프라 교체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홍콩이 디지털 자산 허브를 지향할수록, 은행권의 ‘양자 대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제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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