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YC)에서 ‘두 번째 창업’을 택한 창업자들이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AI로 제품 개발 장벽이 낮아지면서, 한 차례 YC를 경험한 창업자들이 더 가벼운 팀과 더 분명한 전략으로 다시 돌아오는 흐름이 뚜렷해졌다는 분석이다.
크런치베이스 뉴스가 YC로부터 직접 받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05년부터 2026년까지 YC 배치에 두 번 이상 참여한 반복 창업자는 454명으로 집계됐다. 해당 기간 창업자·회사 기록은 935건이다. 이 가운데 428명, 전체의 94%는 YC를 정확히 두 번 거쳤고, 세 번 참여한 창업자는 25명이었다. 네 번 참여한 사례는 트위치와 스타시 공동창업자 저스틴 칸(Justin Kan)이 유일했다.
반복 참여 창업자들은 평균 5.1년 뒤 다시 YC로 돌아왔다. 다만 간격은 뚜렷하게 갈렸다. 전체의 약 30%는 2년 안에 복귀했고, 같은 해에 다시 참여한 경우도 38건이었다. 반면 10년 이상 지난 뒤 돌아온 사례도 61건에 달했다. 곧바로 다음 회사를 시작하는 창업자도 있고, 현업 경험을 쌓은 뒤 재도전하는 창업자도 있다는 뜻이다.
반복 창업자 수는 최근 들어 정점을 찍었다. 2025년에는 65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만 이를 두고 복귀 비율이 급등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최근 몇 년 사이 YC 배치 규모 자체가 커졌고, 2025~2026년 수치에는 새 배치 형식과 일부 미완성 데이터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점은 ‘혼자 돌아오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레이어 바이 레이어, 부두 매뉴팩처링, 울트라, 블레어, 패스트젠 등에서는 기존 공동창업팀이 새 회사로 다시 YC에 함께 들어온 사례도 확인됐다.
샌프란시스코 기반 YC의 제너럴 파트너 아론 엡스타인(Aaron Epstein)은 2026년 봄 배치에서 이런 변화를 직접 체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자신이 이전 회사 때 이미 함께 일했던 ‘두 번째 창업자들’을 여럿 만났다고 설명했다.
엡스타인은 “확실히 지금은 하나의 흐름처럼 느껴진다”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현상으로 보지는 않았다. 과거 YC 출신 창업자 풀이 계속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대상도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반복 창업자의 강점으로 ‘프로그램 활용 능력’을 꼽았다. 처음 YC를 경험하는 창업자와 달리, 두 번째 창업자들은 조언과 네트워크, 자원을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고, 불필요한 잡음을 빠르게 걸러낸다는 것이다.
특히 엡스타인은 두 번째 창업자들이 제품·시장 적합성, 이른바 ‘PMF’ 이전에 인력을 과도하게 뽑거나 비용을 지나치게 쓰는 실수를 더 잘 피한다고 봤다. 그는 많은 성공한 첫 창업자들의 공통 후회로 ‘너무 빨리 많이 채용한 점’을 꼽았다.
이런 변화는 팀 구성에도 반영된다. 반복 창업자 가운데는 두 번째 도전에서 단독 창업을 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다만 엡스타인은 이를 ‘혼자 일한다’는 의미로 보지 않았다. 이미 업계 네트워크를 확보한 만큼, 필요할 때 초창기 핵심 인력을 빠르게 모을 수 있어 더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런 흐름을 과거 클라우드 컴퓨팅의 확산과 비교했다. 예전에는 서버 비용을 위해 큰 자금 조달이 필요했지만, 클라우드가 그 부담을 줄였듯 AI 역시 인력 확충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고 있다는 이야기다.
엡스타인은 AI가 전직 창업자들을 다시 ‘손으로 만드는 작업’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봤다. 새로운 도구 덕분에 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제품의 범위가 크게 넓어졌고, 전통적인 엔지니어링 방식보다 10배, 100배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창업자도 등장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 사례로 그는 2020년 빌드스페이스에서 함께했던 파르자 마지드(Farza Majeed)를 들었다. 마지드는 현재 프로젝트 관리와 업무 자동화를 돕는 AI 도구 헤이클릭키를 만들고 있다.
다만 반복 창업자가 YC를 다시 찾는 이유는 여전히 비슷하다. 파트너들의 맞춤형 조언, 야심 찬 동료 집단, 최상위 투자자와 동문 네트워크 접근성, 그리고 배치 특유의 ‘압축 성장 환경’이 여전히 대체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엡스타인이 두 차례 지원한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은 셔우드 캘러웨이(Sherwood Callaway)다. 그는 처음에는 투자은행 인턴십 대신 샌프란시스코의 소프트웨어 부트캠프를 택하면서 실리콘밸리 진로를 본격적으로 걸었다. 이후 크런치베이스와 브렉스에서 경험을 쌓은 뒤, 2021년 여름 완전 원격 배치에서 첫 회사 오프킷을 창업했다.
오프킷은 보험 인증과 수익주기 관리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헬스케어 핀테크 스타트업이었다. 캘러웨이는 이 회사를 두고 “흥미롭고 보람 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내가 가장 잘 맞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후 오프킷은 11x AI에 인수됐다.
그 경험은 두 번째 회사 사자비로 이어졌다. 캘러웨이는 첫 회사가 다소 ‘MBA 케이스 스터디식’ 접근이었다면, 사자비는 자신의 관심과 강점에 더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사자비는 데이터독과 경쟁하는 AI 네이티브 관측성 플랫폼으로, 그가 커리어 내내 다뤄온 엔지니어링 운영 영역에 기반하고 있다.
그는 첫 창업자들이 오히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를 피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두 번째 창업에선 결국 그 영역으로 돌아오는 패턴이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캘러웨이도 사자비를 통해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으로 복귀했다고 말했다.
이번 YC 복귀는 애초 계획된 일은 아니었다. 오프킷 시절 파트너였던 엡스타인이 포함된 이메일을 계기로 연결이 다시 닿았고, 이후 그는 첫 경험을 바탕으로 참여 시점까지 더 전략적으로 조정했다. 제품을 먼저 더 다듬기 위해 배치 시점을 늦춘 것이다. 캘러웨이는 YC를 ‘시장 진입을 가속하는 이벤트’처럼 활용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캘러웨이는 2026년 봄 YC 현장을 두고 자신의 첫 배치 때보다 훨씬 경험 많은 창업자들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AI 시대 특유의 고민도 읽힌다고 했다. 코드 작성 비용이 사실상 ‘제로’에 가까워지면서, 무엇이 장기적인 경쟁 우위, 즉 ‘모트’가 될지를 두고 불안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자금 조달 분위기에 대해서는 2021년과의 유사점도 언급했다. 그는 2026년 봄이 2021년 가을과 비슷한 열기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다만 2021년이 저금리와 유동성 확대의 힘을 탔다면, 2026년은 AI와 실제 성과 개선이 더 직접적인 동력이라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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