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확산이 가상자산 채택을 촉진하는 구조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AI 에이전트가 사람의 개입 없이 서비스와 데이터를 구매하고 금융 거래를 수행하면 스테이블코인과 블록체인이 결제·정산 인프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블랙록(BlackRock)은 9월 발간한 보고서 ‘기계 네이티브 경제(The Machine-Native Economy)’에서 AI를 ‘기계 네이티브 지능’, 디지털 자산을 ‘기계 네이티브 화폐’로 규정했다. AI가 정보를 해석하고 디지털 자산이 가치를 이전하는 기능을 맡으면서 두 기술이 경제 활동 안에서 결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AI 에이전트가 외부 도구와 인프라를 활용해 여러 단계의 작업을 수행하고, 제한적인 사람의 개입만으로 구매와 금융 거래까지 처리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블록체인은 기계가 읽을 수 있는 자산 정보와 조건에 따른 자동 정산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고 봤다.
AI 에이전트는 사람의 지시에 따라 외부 서비스와 데이터를 호출하고 결과를 처리하는 시스템이다. 이 과정에서 결제와 정산까지 자동화하려면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거래 조건과 중단 없이 작동하는 결제 수단이 필요하다.
핵심 결제 수단으로는 스테이블코인이 제시됐다. 스테이블코인은 통상 달러 등 기준 통화의 가치에 연동되도록 설계돼 가격 표시와 정산에 활용하기 쉽고, 24시간 작동하는 소액·고빈도 기계 간 결제에 적합할 수 있다는 평가다.
블랙록 보고서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유통 시가총액은 2026년 9월 3000억달러(약 406조원)를 넘어섰다. 2025년 조정 거래량은 11조달러(약 1경4894조원)를 웃돌았고,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80%로 제시됐다.
다만 이 거래량은 Visa·마스터카드 거래량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동일한 기준이 아니다. 집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를 전통 결제망과 단순 대조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블랙록은 보고서에서 기존 결제망의 절차와 비용·정산 시간이 AI 에이전트의 실시간 소액 결제에 제약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구조는 AI 에이전트와 API 사이의 자동 결제 논의와도 맞닿아 있다. 앞서 카르다노의 AI 에이전트·API 자동 결제 표준 참여 사례에서도 실제 플랫폼 채택 규모와 메인넷 결제 확산 여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한 과제로 제시됐다.
블랙록은 컴퓨팅 자원이 가상자산의 새로운 시장이 될 가능성도 제시했다. AI 모델을 학습하고 구동하는 데 필요한 컴퓨팅 용량을 표준화하면 사용 권리와 계약을 토큰으로 표시해 이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컴퓨팅 선물 상품이 만들어지면 가격 발견과 위험 관리에 활용될 수 있다는 설명도 나왔다. 다만 이는 현재 시장이 이미 형성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컴퓨팅 자원의 권리와 계약을 금융 상품으로 다루기 위한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인텔리전트 클라우드, 구글 클라우드의 합산 매출은 2030년 약 1조1000억달러(약 1489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이 수치는 2026년 8월 31일 기준 블룸버그가 집계한 매도 측 애널리스트 추정치다.
컴퓨팅 자원은 칩 세대와 성능, 지역별 전력 비용에 따라 차이가 크다. 따라서 토큰화를 추진하려면 계약 조건과 현금 정산 방식, 실제 용량 인도 기준을 표준화해야 한다.
블랙록은 AI 에이전트 결제와 컴퓨팅 시장의 유동성이 아직 초기 단계라고 진단했다. AI 활용과 에이전트의 자율성이 확대되면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된 실물자산, 블록체인 정산을 지원하는 가상자산의 활용도가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보고서가 제시한 핵심은 AI와 가상자산의 결합 가능성이지, 특정 시장이나 자산의 성장을 확정한 것은 아니다. 결제 표준과 컴퓨팅 계약의 정비, 실제 유동성 확보가 뒤따를지가 향후 관건이다.

김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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