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관용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예금 토큰을 활용한 국제 지급결제 실거래 시험에 참여하면서, 국가 간 송금과 결제 방식을 디지털 기반으로 바꾸는 실험이 실제 거래 단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한국은행은 30일 국제결제은행(BIS)과 국제금융협회(IIF)가 주관하는 민관 협력 사업 ‘프로젝트 아고라’의 실거래 테스트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한국과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 스위스, 멕시코, 캐나다 등 8개국 중앙은행과 40여개 금융기관이 함께 국가 간 지급결제 체계를 시험하는 프로젝트다. 기존 해외 송금은 여러 중개기관을 거치면서 시간과 비용이 늘어나는 구조인데, 중앙은행이 발행·관리하는 디지털 형태의 결제 수단과 은행 예금을 토큰 형태로 바꾼 결제 수단을 활용하면 이 과정을 더 빠르고 단순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번 실거래 테스트에는 한국은행을 포함한 각국 중앙은행과 민간 금융기관 등 28개 기관이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이 함께했다. 시험 대상은 은행 간 거래와 기업 간 거래를 포함해 단일 통화 거래, 이중통화 거래, 외환동시결제 등 모두 17개 시나리오로 구성됐다. 사용된 통화는 원화, 미 달러화,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스위스 프랑화, 일본 엔화다. 외환동시결제는 서로 다른 통화를 동시에 주고받아 결제 불이행 위험을 줄이는 방식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으로 꼽힌다.
한국은행은 이번 시험에서 토큰화 지급준비금(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한 자금을 디지털 토큰 형태로 구현한 것)을 활용한 은행 간 원화 이체 거래 2천만원 규모를 NH농협은행, 신한은행과 함께 진행했다. 한국은행이 두 은행의 지급 지시 요청을 받아 아고라 플랫폼에서 토큰화된 지급준비금을 발행하고, 이를 이전한 뒤 상환하는 절차를 시험한 것이다. 프로젝트 아고라 측은 지난 5월 구축한 플랫폼의 주요 기능과 업무 절차가 실제 운영과 유사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이번 실시간 거래를 통해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민간은행 차원의 시험도 의미를 더했다. KB국민은행은 별도로 일본 MUFG은행과 일본 엔화 기반 실거래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밝혔다. 국내 시중은행이 해외 은행과 예금 토큰 기반 지급결제 테스트를 성공한 것은 처음이라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이는 중앙은행 차원의 제도 실험을 넘어, 실제 은행들이 국경을 넘는 결제 업무에 디지털 토큰 기술을 적용할 가능성을 점검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국은행은 앞으로 프로젝트 아고라에 계속 참여하면서, 자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실증사업인 ‘한강 플랫폼’과 아고라 플랫폼의 연계 및 상호운용성 확보도 검토할 계획이다. 이번 시험은 당장 제도 도입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 결제 인프라가 기존 중개 중심 구조에서 디지털 자산 기반 구조로 옮겨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추가 실거래 시나리오 발굴과 제도 정비 논의로 이어지면서, 국가 간 송금의 속도와 비용, 안전성을 함께 바꾸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