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가 단순 응답 도구를 넘어 결제와 거래 실행을 맡는 시스템으로 넓어지면서 블록체인을 거버넌스 레이어로 쓰려는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 핵심은 특정 토큰 가격이 아니라 에이전트가 누구를 대신해, 어떤 권한으로, 무엇을 했는지 남기는 신원과 검증 장치다.
크립토브리핑(Crypto Briefing)은 19일 에이전틱 AI의 병목을 책임 추적성으로 짚고 블록체인과 스마트컨트랙트, 탈중앙 신원을 거버넌스 레이어 후보로 제시했다. AI 에이전트가 돈을 쓰고 외부 서비스를 호출하며 결과를 남기기 시작하면 기존 계정 관리만으로는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다.
논의의 초점은 AI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 기술보다 AI가 권한을 행사할 때 남겨야 할 기록으로 옮겨가고 있다. 에이전트가 API를 호출하고 결제하며 디파이에서 거래를 실행하는 구조에서는 신원, 권한 범위, 실행 기록, 사후 감사가 함께 묶여야 한다. AI 에이전트 경쟁이 모델 성능에서 기업 시스템으로 이동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안드리센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는 2026년 4월 16일 글에서 에이전트 경제의 병목을 “identity, not intelligence”라고 표현했다. 회사는 KYA, 즉 ‘에이전트 알기’ 개념과 이동 가능한 신원, 프로그래머블 지갑, 검증 가능한 증명을 블록체인의 역할로 제시했다. 사람이 KYC로 신원을 확인받듯 에이전트도 소유자, 권한, 제한 조건, 평판을 암호학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더리움(ETH) 진영에서는 ERC-8004가 표준 논의의 축으로 제시됐다. ERC-8004 문서는 에이전트 신원 등록부, 평판 등록부, 검증 등록부를 규정한다. 또 MCP와 A2A 같은 에이전트 통신 규약이 발견과 신뢰를 완전히 다루지 못한다고 적고, 평판 시스템, 지분 기반 재실행, 영지식 머신러닝, 신뢰실행환경을 검증 모델로 나눴다.
다만 ERC-8004는 결제를 표준 범위 밖으로 뒀다. 에이전트를 찾아 신뢰하고 검증하는 구조와 실제 결제 정산 구조를 분리한 것이다. 이는 에이전트 인프라가 신원, 평판, 결제, 감사라는 여러 층으로 나뉘어 경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제품화도 시작됐다. 메타마스크(MetaMask)는 2026년 6월 8일 Agent Wallet을 공개했다. 이어 8월 6일 이를 live 상태로 전환했다. 회사는 자가수탁 구조 안에서 AI 에이전트가 사용자가 정한 한도와 허용 목록 안에서 온체인 거래를 수행하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에이전트 지갑은 사용자가 모든 거래를 직접 누르는 방식과 다르다. 사용자가 사전에 정한 규칙 안에서 소프트웨어가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에 지갑은 단순 보관 수단을 넘어 정책 집행 장치가 된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도 AI 에이전트 전용 지갑과 결제 인프라 구축이 진행되는 가운데 신원과 사용자 통제 기술이 함께 거론되는 이유다.
프랭클린템플턴(Franklin Templeton)은 에이전틱 AI가 머신-투-머신 거래를 만들 수 있으며 이를 처리하려면 고속, 검증 가능, 자동 집행이 가능한 기록 체계가 필요하다고 봤다. 같은 글은 암호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신원, 감사 가능성, 안정적인 정산 레이어를 블록체인의 역할로 제시했다. 다만 이는 블록체인 채택이 확정됐다는 뜻이 아니라 필요한 인프라 후보를 설명한 것이다.
통상 금융 거래, 데이터 접근, 외부 서비스 호출은 각각 다른 위험을 갖기 때문에 권한 범위와 로그를 분리해 설계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온다. 블록체인 기반 등록부와 스마트계약은 이 가운데 일부 기록을 공개 검증 가능한 형태로 남기는 데 쓰일 수 있다.
반론도 분명하다. IC3는 2026년 6월 서베이에서 AI와 크립토의 결합이 아직 의미 있는 통합의 초기 단계라고 정리했다. 탈중앙 거버넌스와 인프라 관리가 메인스트림 AI에서 실사용 수준의 채택을 얻었다고 보기 어렵고, 에이전트 결제도 중앙화 대안보다 비용과 효용을 더 엄밀하게 입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블록체인의 역할도 좁게 봐야 한다. 온체인 기록은 타임스탬프와 등록, 감사 추적에는 강점이 있지만 AI 생성물의 진위나 모델 오작동 자체를 판별하는 만능 장치는 아니다. 등록과 검증은 다르고, 평판 시스템에는 조작 가능성도 남는다.
국내 크립토 독자에게 중요한 지점도 여기에 있다. 시장 의미는 특정 토큰 수혜보다 표준, 지갑, 결제, 검증 레이어가 실제 사용 사례를 얻는지에 있다. AI 에이전트가 자산과 시스템을 다루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블록체인 인프라가 신원 확인과 책임 추적을 보조할 수 있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쟁점은 표준 제안과 지갑 제품이 실제 사용 환경에서 비용, 보안, 책임 추적성을 입증할 수 있느냐다. ERC-8004는 신원과 평판, 검증의 틀을 제시했고 메타마스크는 에이전트 지갑을 제품군에 넣었다. IC3가 지적한 비용과 효용 검증은 이 논의가 실사용 인프라로 넘어가기 전 남은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