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유사들이 사우디 원유를 들여올 때 현물 가격과 선적 경로를 함께 따지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의 해상 리스크가 이어지면서 아시아 원유 거래의 판단 기준이 가격에서 운임, 보험료, 도착 일정으로 넓어졌다.
로이터는 사우디아람코(Saudi Aramco)가 일부 아시아 정유사와 아랍 미디엄, 아랍 헤비 원유를 아랍에미리트 푸자이라 인근에서 선박 간 이전(STS) 방식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거론된 물량은 9월 선적분이며, 사우디아람코는 논평을 거부했다.
선박 간 이전은 항만에 접안하지 않고 해상에서 유조선끼리 원유를 옮겨 싣는 방식이다. 푸자이라는 호르무즈 해협 밖에 있는 거점이어서 구매자는 유조선을 해협 안쪽으로 들여보내지 않고 원유를 받을 수 있다. 통상 정유사는 원유 가격뿐 아니라 항로 안전, 보험 조건, 선박 대기 시간까지 합쳐 조달 비용을 계산한다.
이번 협의는 중국이 사우디 원유 1,000만 배럴을 희소한 현물 입찰로 확보했다는 보도와 맞물려 주목받았다. 다만 로이터가 7월 확인한 1,000만 배럴은 라스 타누라에서 선적돼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간 사우디 원유 물량이다. 이 수치가 푸자이라 인근 현물 협의의 확정 물량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초대형 유조선 5척은 총 1,000만 배럴의 사우디 원유를 싣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이 가운데 2척은 중국, 2척은 일본으로 향했다. 사우디아람코는 아시아 판매를 앞당기기 위해 일부 물량에 현물 가격 방식을 적용했다.
사우디의 대중국 공급은 전체로 보면 늘어나는 흐름이다. 로이터는 사우디의 8월 대중국 원유 수출이 5,100만 배럴, 하루 165만 배럴 수준으로 늘어 2023년 4월 이후 최고 수준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 보도는 8월 물량이 7월 배정량보다 400만 배럴 많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체 배정량 증가와 개별 정유사의 현물 조달 판단은 같은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일부 중국 정유사는 장기계약 물량을 줄이거나 신청하지 않는 한편, 가격 조건이 맞는 현물 물량은 따로 검토할 수 있다. 사우디 원유와 러시아, 이라크 등 대체 공급의 할인 폭이 함께 비교 대상이 되는 구조다.
사우디는 8월 아시아용 공식판매가격(OSP)도 낮췄다. 로이터는 사우디가 아랍 라이트 기준 8월 선적분 OSP를 오만·두바이 평균보다 배럴당 1.50달러(약 2,087원) 낮췄다고 전했다. 일부 거래자는 사우디 원유가 여전히 경쟁 산유국보다 비싸다고 봤다.
가격보다 항로가 먼저 거래 조건을 바꾸는 흐름도 이어진다. 본지는 앞서 중국 정유사들이 할인된 이라크산 원유 매입을 늘리며 걸프 원유 조달 흐름이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에도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 항로 불안은 원유 가격보다 운임, 보험, 도착 일정에 먼저 반영되는 구조로 설명됐다.
사우디아람코가 활용할 수 있는 대체 경로는 푸자이라만이 아니다. 호르무즈 안쪽 물량 외에 얀부, 시디케리르, 푸자이라 인근 이전 방식이 함께 거론된다. 본지는 앞서 아시아 정유사들이 사우디 원유 인도 지점을 얀부에서 이집트 시디케리르로 바꾸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얀부는 사우디 홍해 연안의 원유 수출 거점이고, 시디케리르는 이집트 지중해 쪽 터미널이다. 이 경로는 홍해와 지중해를 잇는 파이프라인과 터미널을 활용해 일부 해상 위험을 줄이는 방식으로 검토된다. 다만 항로가 길어지면 운임과 연료비가 늘어 가격 할인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
국제유가도 같은 배경에서 움직였다. 로이터는 20일 오후 5시 13분 한국시간 기준 브렌트유 10월물이 배럴당 92.82달러(약 12만9,143원), 서부텍사스산원유(WTI) 9월물이 86.75달러(약 12만659원)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중동 공급 차질 우려가 가격을 지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오반니 스타우노보(Giovanni Staunovo) UBS 애널리스트는 “중동 긴장이 높게 유지되면서 추가 공급 차질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의 사우디 원유 조달 변화가 단순한 수요 회복 신호라기보다 공급 경로와 위험 프리미엄 조정에 가깝다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한국 시장에도 이 흐름은 원유 수입 비용과 물가 경로를 통해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은 중동산 에너지 수입 비중과 해상 운임 변화에 민감하고, 유가는 물가와 금리 기대를 거쳐 위험자산 심리에 간접적으로 반영된다. 다만 이번 사안만으로 비트코인(BTC) 등 특정 자산 가격 방향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확인된 사실은 사우디아람코가 일부 아시아 고객과 현물 가격 및 대체 선적 경로를 병행해 협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1,000만 배럴은 7월 라스 타누라 출항 물량으로 확인됐고, 푸자이라 인근 협의의 확정 물량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