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공급 우위로 이어진 달러-원 환율 하락세가 연중 1,300원대 후반에서 제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대미투자 확대와 국민연금의 환헤지 종료 가능성이 추가 하락을 막을 요인으로 지목됐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11일 발표한 환율 분석 보고서에서 최근 흐름을 구조적인 원화 강세 전환보다 수급 요인에 따른 일시적인 강세로 평가했다. 7월 이후 원화 강세를 이끈 주요 요인으로는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조달 자금 환전 수요를 들었다.
SK하이닉스가 ADR로 조달한 금액은 265억달러(약 37조6천억원)다. 이 자금이 원화로 환전되면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공급이 늘어나 달러-원 환율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8월 법인세 납부와 주요 기업의 달러 추격 매도도 환율 하락에 힘을 보탠 것으로 분석됐다. 일부 중공업체가 환헤지 비율을 높인 점도 달러 공급 우위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본지는 앞서 한화오션이 환헤지 목표 비율을 70% 안팎으로 높인 뒤 선물환 매도 규모가 50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선물환 매도는 기업이 앞으로 받을 달러를 미리 정한 환율에 팔기로 약정해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는 거래다.
대외 여건도 달러의 추가 강세를 제한했다. 이란 전쟁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완화된 데다 미국 고용지표가 부진하게 나오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기대가 되돌려졌다는 분석이다.
권 연구원은 달러-원 환율을 더 끌어내릴 재료가 남아 있지만 연중 하단은 1,300원대 후반으로 전망했다. 최근의 원화 강세를 장기 추세의 변화로 해석하기에는 달러 수요 요인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판단이다.
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 변동성과 맞물려 7월 이후 내국인의 미국 주식투자 재확대와 견조한 해외투자 흐름이 확인된다”며 “지난 6월 한미전략투자공사가 출범했고, 하반기 해외직접투자(FDI) 확대 시 달러 실수요와 잠재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투자가 늘면 투자 대금을 마련하기 위한 달러 매수 수요가 환율 하단을 받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외직접투자는 국내 기업이나 기관이 해외 사업체와 시설 등에 자금을 투입하는 활동이다. 투자 과정에서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수요가 발생하면 기업의 달러 매도와 반대 방향으로 외환 수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 종료 가능성도 환율 하단을 제한할 요인으로 거론됐다. 권 연구원은 달러-원 환율이 비상계엄 여파로 1,485원에 이르렀을 때 국민연금이 전략적 환헤지를 가동했고, 지난해 6월 1,350원까지 내려오자 종료한 것으로 판단했다.
전략적 환헤지는 해외 자산의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해 외화 노출을 일정 부분 조정하는 방식이다. 환율이 더 안정되면 기존 헤지 거래를 종료하는 과정에서 달러 수급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해석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는 제한적으로 평가됐다. 권 연구원은 “2024년 9월 시장을 지배한 엔 캐리 청산 분위기 당시 미국 고용 둔화에 따른 빅 컷(50bp) 전망이 확산했다”며 “미국 금리 급락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현재 수준의 일본은행(BOJ) 스탠스로 엔 캐리 청산 우려가 더 불거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1bp는 0.01%포인트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엔화로 자금을 조달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거래로, 미국 금리와 엔화 가치가 급격히 움직이면 포지션 청산 압력이 커질 수 있다.
환율 하락은 비트코인(BTC)과 같은 달러 표시 자산의 원화 환산 가격에도 영향을 준다. 달러 가격이 같더라도 달러-원 환율이 내려가면 국내 투자자가 체감하는 원화 기준 가격은 낮아진다.
다만 권 연구원의 분석은 외환시장의 달러 수급과 환율 범위에 초점을 맞췄다. 비트코인 가격에 미칠 영향은 달러 기준 가격 흐름과 함께 살펴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