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인공지능(AI) 컴퓨팅 능력에 연동된 파생상품을 제도권 시장에서 다룰 수 있는지 공개 의견수렴에 들어갔다. 쟁점은 GPU를 직접 사고파는 문제가 아니라, GPU 임대료와 컴퓨팅 접근성을 표준화된 선물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느냐다.
CFTC는 19일(현지시간) 컴퓨트 파생상품 계약과 관련해 컴퓨트 현물시장 규모와 유동성, 시장감시와 시세조작 우려, 고객보호, 무기한 컴퓨트 선물 등을 의견수렴 항목으로 제시했다. 마이클 셀리그(Michael S. Selig) CFTC 위원장은 “미국은 견고한 컴퓨트 파생상품 시장 없이는 AI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며 이번 절차가 “미국 컴퓨트 시장의 명확한 규칙을 세우는 첫 단계”라고 말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셀리그 위원장은 CFTC 공식 연설에서도 백악관 AI 행동계획이 스타트업과 학계의 대규모 컴퓨트 접근성 확보를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견고한 컴퓨트 시장이 이 정책 목표를 뒷받침할 수 있다고 밝혔다. CFTC가 컴퓨트를 새로운 디지털 상품 영역으로 다루려는 배경이다.
컴퓨트는 AI 모델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연산 자원을 뜻한다. 지금까지는 클라우드 계약이나 데이터센터 이용료에 가까운 비용 항목으로 다뤄졌지만, GPU 공급 부족과 임대료 변동성이 커지면서 금융시장에서는 이를 헤지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지가 논의되고 있다.
거래소 움직임도 이미 시작됐다. CME그룹(CME Group)은 실리콘데이터(Silicon Data)와 함께 10월 5일 컴퓨트 선물 상장 계획을 발표했다. 상품은 엔비디아($NVDA) H100과 블랙웰 B200의 월간 임대 비용을 추적하는 지수 선물이다.
다만 CFTC 산업등록 페이지에서 ‘Silicon Data H100 Rental Index Futures’와 ‘Silicon Data B200 Rental Index Futures’는 모두 ‘Approval Pending (45)’ 상태로 올라와 있다. 거래 개시가 확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CME그룹도 상품 상장이 규제 검토를 전제로 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안은 본지가 앞서 보도한 GPU 임대료를 지수화해 AI 인프라 비용을 헤지 대상으로 삼는 구조의 후속 흐름이다. 당시 핵심은 CME그룹과 실리콘데이터가 컴퓨트 선물 상장을 추진한다는 점이었다. 이번에는 CFTC가 시장감시와 고객보호, 무기한 선물 가능성까지 공개 질문으로 끌어냈다는 점이 다르다.
인터컨티넨털익스체인지(ICE)도 NATIVX와 함께 에너지 정규화 컴퓨트 선물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아키텍트 파이낸셜 테크놀로지스(Architect Financial Technologies)는 미국 파생상품거래소 인수 뒤 컴퓨트와 AI 상품 선물 거래소를 출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CME그룹, ICE, 아키텍트가 같은 영역에 들어서면서 AI 인프라 비용을 둘러싼 파생상품 경쟁은 거래소 차원의 문제로 넓어졌다.
시장 구조의 핵심은 표준화다. H100 시간과 B300 시간은 같은 상품이 아니고, 같은 GPU라도 전력, 지역, 네트워크, 계약 조건에 따라 비용이 달라질 수 있다. 원유나 금처럼 단일 품질 기준으로 묶기 어려운 이유다.
블록스페이스(Blockspace)는 이런 차이 때문에 현물 인도형보다 현금결제 구조가 선택된다고 전했다. SSRN에 공개된 관련 논문도 컴퓨트 선물의 핵심 쟁점으로 ‘베이시스 리스크’를 지적했다. 선물 가격과 실제 임대 비용이 벌어질 경우 헤지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업계의 기대는 AI 인프라 비용을 금융시장에서 관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AI 개발사와 클라우드 사업자는 GPU 임대료 변동을 비용 리스크로 안고 있고, 거래소는 이를 표준화된 지수와 선물 계약으로 옮기려 한다. 반대로 컴퓨트가 물리적 인도 기준과 품질 기준을 명확히 세우기 어렵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크립토 시장과의 연결점은 파생상품 규제다. CFTC는 최근 가상자산, AI, 예측시장, 무기한 계약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 본지가 보도한 CFTC 혁신자문위원회의 가상자산·AI·예측시장 논의도 같은 축에 있다.
컴퓨트 선물은 코인 상품은 아니지만, 무기한 계약과 디지털 상품 분류, 거래소 감시 체계라는 면에서 크립토 파생상품 논의와 맞닿아 있다. 특히 미국 내 무기한 선물 허용 범위와 거래소 감독 기준은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핵심 쟁점으로 이어져 왔다.
국내 투자자에게도 이 사안은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비용, 파생상품 규제의 교차점으로 읽힌다. 엔비디아 GPU 임대료를 기초로 한 지수가 제도권 선물로 다뤄질 경우 AI 인프라 비용을 보는 금융시장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다만 현재 단계에서 가격 영향이나 특정 기업 수혜를 단정할 근거는 없다.
CFTC는 관련 공지가 연방관보에 게재된 뒤 60일 동안 의견을 받는다고 안내했다. CME그룹 상품도 규제 검토가 남아 있다. 컴퓨트가 원유나 금처럼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자리 잡을지는 벤치마크 설계, 결제 구조, 감시 체계가 먼저 정리돼야 판단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