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요 도시들을 중심으로 주택 매물이 빠르게 늘어나며 팬데믹 이전 수준을 뛰어넘는 지역이 속출하고 있다. 전미 지역별 주택 재고 조사에 따르면, 전국 평균으로는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대비 낮은 수준이지만, 시애틀, 덴버 등 일부 대도시는 오히려 2019년보다 더 많은 주택이 시장에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높은 주택 가격과 치솟은 모기지 금리로 수요가 위축되며 거래가 둔화된 데 따른 결과다.
부동산 플랫폼 리얼터닷컴(Realtor.com)은 2025년 5월 기준 전국 주택 매물이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으며, 통계 집계 이후 19개월 연속 상승세를 기록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시애틀과 오스틴, 댈러스 등 주택 공급이 왕성했던 도시들에서는 매물이 팬데믹 전보다 50% 이상 많아졌으며, 덴버는 무려 2배에 달했다. 리얼터닷컴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다니엘 헤일(Danielle Hale)은 “최근 몇 년간 과도한 가격 상승으로 접근이 어려웠던 주택 시장이 점차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매도자 우위' 시장이라는 진단이다. 일반적으로 주택 매물이 6개월치 이상 축적되어야 매수자 중심의 시장으로 평가되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4.6개월치에 머물렀다. 그러나 매물 증가세가 뚜렷한 도시들에서는 수요 위축과 더불어 *가격 인하*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5월 한 달간 매도자 중 19%는 집값을 낮춘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201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재고가 쌓이는 원인은 간단하지 않다. 리스팅 가격은 여전히 지난해와 같은 44만 달러(약 6억 3,000만 원) 수준으로 고정되어 있는 반면, 높은 금리와 생활비 압박 속에 신규 구매자는 쉽게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리얼터닷컴 보고서에 따르면 5월 주택 거래량은 전년 동기 대비 2.5% 줄었고, 이는 한 달 평균 7%에 근접한 모기지 이자 부담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공급 측면에서는 주택 건설업체들이 수요 부족과 장기적인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신규 주택 착공을 늘리고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 재고를 부추길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가격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헤일은 “도시별로 시장 회복 속도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주민들의 접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미국 주택 시장은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재고 누적이 가시화되고 있으며, 이는 향후 가격 변동성과 건설 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여전히 전국 평균 수준에서는 완전한 매수자 시장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특정 도시에서는 이미 그런 전환이 시작됐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