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벤처 시장에서 거품 논쟁이 다시 뜨겁다. AI 스타트업들에 대한 투자 열기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이번 사이클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견해도 확산되고 있다. 특히 최근의 투자 흐름은 AI를 제외한 대부분의 분야에서 침체가 장기화되는 양상을 보이며, 2021년 기술주 급등기와는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
이번 상승장의 가장 큰 특징은 AI 업종에의 쏠림 현상이다. 몇몇 대형 AI 스타트업에 자금이 집중되고 있지만, 클린테크, 바이오테크, 소비재를 포함한 여타 분야엔 여전히 찬바람이 불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바이오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 투자 비중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AI 중심의 불균형 성장 구조는 향후 시장 조정이 오더라도 전체 산업이 아닌 일부 분야에 국한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기업공개(IPO) 시장의 열기도 한풀 꺾였다. 2020년과 2021년엔 전통 IPO, 스팩 상장, 직접 상장 등으로 수백 개 스타트업이 증시에 데뷔했지만, 2025년엔 해당 수치가 50개도 채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AI 대표 유니콘으로 꼽히는 오픈AI(OpenAI)와 앤스로픽(Anthropic)조차 아직 비상장사로 남아 있으며, 상장 계획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도 전무한 상황이다.
거대 자금 유입도 일부 기업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올해 미국에서 성사된 1억 달러 이상의 메가라운드 비중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오픈AI가 400억 달러(약 57조 6,0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유치하며 전체 메가라운드 중 4분의 1을 차지한 일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러한 대형 거래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전체 투자 건수는 몇 년 내 최저치를 경신해, 실제 자금 흐름은 특정 기업에만 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2021년과 현재를 가르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금리 환경의 변화다. 당시엔 코로나19 팬데믹 극복 과정에서 이례적인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며 위험을 감수하고도 높은 수익을 좇는 자금이 많았다. 반면 지금은 고금리, 저성장이 고착된 상황에서 기술주 투자에도 보다 보수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AI 기술이 고용, 산업 구조 전반에 미치는 충격까지 겹쳐 거시경제적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이클의 전개 방식은 되풀이되는 경우가 많다. 투자 열기는 피크를 향해 치솟고, 곧이어 조정 국면이 찾아온다. 과거와 다른 구조적 요인이 있다 해도 과도한 밸류에이션은 언젠가 반드시 조정받는 법이다. 이번 사이클이 정점을 찍었는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지만, 현재 시점은 바닥보다는 정상에 훨씬 더 가까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