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스타트업들의 연간 반복 매출(ARR) 성장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올해 들어서만 글로벌 AI 기업들이 유치한 자금은 약 1,180억 달러(약 170조 원)를 넘었다는 크런치베이스의 집계가 나왔다. 매출 기준으로도 수억 달러 규모의 ARR을 달성한 스타트업이 다수 등장하며 그 기세는 실리콘밸리를 넘어 세계 경제 전반에 파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고속 성장에 대해서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일부 투자 전문가들은 AI 분야에서의 과도한 자본 지출이 정점을 찍고 있으며, 특히 아직 수익 기반이 약한 기술 기업들은 시장 조정 시기에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단순한 거품 논쟁을 넘어서, 변동성에 대한 준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다.
AI 스타트업이 견조한 ARR을 가지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계약 구조에 있다. 신뢰할 수 있는 ARR은 장기 계약, 반복 갱신, 그리고 핵심 IT 예산안에 포함된 확정 지출에서 비롯된다. 반대로, 단기 파일럿 사업이나 개념 검증(PoC), 혁신 예산 등을 기반으로 하는 매출은 조직의 우선순위 변화에 따라 쉽게 날아갈 수 있으며, 이는 ’지속적 수익’보다는 ‘자극적 성장’에 가깝다.
고객 이탈률(Churn Rate) 또한 중요한 판단 지표다. 전통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월간 고객 이탈률이 5~7% 수준인 데 반해, 많은 AI 스타트업들은 두 배 이상의 이탈률을 겪고 있다. 이는 곧 비즈니스 유지조차 버거움을 의미하며, 고객을 잃은 자리를 메우기 위한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는 뜻이다.
또 다른 차별점은 플랫폼의 통합력이다. 진정한 ARR은 고객의 핵심 업무 프로세스, 데이터 파이프라인, 다수 부서에 깊이 박혀 있다. 이처럼 쉽게 바꾸기 힘든 구조적 연결이 있는 서비스는 단기간 트렌드에 고립되지 않는다. 반면 통합이 얕고 배치가 가벼운 제품은 대체가 쉽고, 장기 가치 창출을 담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ROI(투자 대비 성과) 역시 ARR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다. 측정 가능한 가치 창출, 명확한 비즈니스 목표, 장기 고객 로드맵을 기반으로 한 ARR은 신뢰할 수 있다. 반면, 단순히 AI 붐에 편승해 ‘적용 사례’ 정도로 도입된 제품은 명확한 성과 없이 시장에서 빠르게 소거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스타트업과 투자자 모두 단순한 ARR 수치만을 좇기보다는, 매출의 내구성을 평가하는 안목이 요구된다. 계약의 전환율, 순 매출 유지율, 총이익률, 확장성 같은 핵심 지표들이 이를 뒷받침할 때 ARR의 질은 비로소 인정받는다. 실제로 생산성 향상, 정확도 개선, 고객 전환율 증가 등 측정 가능한 성과가 다른 툴 대비 분명한 우위를 제공할 때에야 지속 가능한 ARR로 진화할 수 있다.
AI는 우리의 업무 방식과 비즈니스 성장 속도를 급격히 바꾸고 있지만, 비즈니스의 기본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창업자라면 ARR을 자랑하기 전에 그 속의 유지력, 수익성, 방어력을 점검해야 하며, 투자자는 눈에 띄는 속도보다 흔들림 적은 사업 기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다음 AI 시장의 승자는 안정성을 갖춘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