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웹을 지배한다… '기계 친화적 인터넷' 시대 개막

| 김민준 기자

우리는 지금 웹의 근간이 바뀌는 지점에 도달해 있다. 단순한 디자인 개선이 아니라 근본적인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30년간 인터넷은 인간의 눈과 손에 맞춰 설계돼왔다. 클릭하고 스크롤하고, 선택지를 따라가는 방식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이제 그 주 이용자는 우리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생성형 인공지능(AI) 기반의 *에이전트 컴퓨팅*이 온라인 생태계의 판을 뒤흔들고 있다. 챗GPT, 코파일럿, 클로드, 제미니와 같은 AI 에이전트들은 단순한 보조 도구 수준을 넘어, 사용자를 대신해 직접 판단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정보를 탐색하고 결정을 내리는 주체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인터넷은 여전히 인간 중심의 인터페이스로 구성돼 있어, AI가 온전히 기능하기에 비효율적이다. 현재 AI는 사람처럼 버튼을 클릭하고 양식을 채우는 식으로 활동을 수행하고 있지만, 이는 마치 로봇 손에 장갑을 씌워 사람처럼 행동하라고 강요하는 셈이다. 속도로 비유하자면, 페라리를 자갈길에서 운전하게 하는 형국이다.

이제 새로운 인터넷이 필요하다. 기계가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른바 '기계 친화적인' 웹이다. 이에 따라 웹페이지는 단순한 시각적 디스플레이가 아닌 API 중심의 *엔드포인트*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눈으로 읽고 클릭하는 대신, AI는 정형·비정형 데이터와 맥락을 기반으로 실시간 의사결정을 수행하게 된다.

앞으로의 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속도와 신뢰성이다. AI는 '이 상품이 최적의 옵션인가?'라는 질문에 즉시 답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메타데이터 구조가 체계적으로 설계돼야 한다. 신뢰도 높은 출처, 정확한 정보, 검증 가능한 통계가 그 기준이 된다. 인간을 위한 ‘사용자 경험(UX)’은 AI를 위한 ‘기계 경험(MX)’이라는 새로운 기준으로 대체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두 갈래로 나뉜 인터넷 환경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을 위한 시각적이고 설득 중심의 웹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편, 속도와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AI 중심의 웹이 병존할 것이다. 그러나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각 디지털 환경이 AI 해석을 위한 ‘기계 해독 레이어’를 갖추는 방향이다.

이 변화는 기업 전략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검색 최적화(SEO)는 이제 ‘기계 경험 최적화(MEO)’로 진화한다. 브랜드 신뢰도는 디자인보다 데이터 투명성과 접근성에 의해 평가된다. AI가 선택할 사이트는 디자인이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가장 신속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AI에 최적화된 곳이 된다.

향후 5년 내, 클릭을 통해 구매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AI 대리인이 될 것이다. 이들은 하루에도 수백 번의 결정을 내리며 콘텐츠를 큐레이션하고,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며, 일정을 조율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디지털 생태계를 관장할 것이다.

변화의 핵심은 브라우저의 업그레이드가 아니다. 웹의 작동 원리 자체가 재작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 중심으로 설계된 과거의 웹에서, AI 에이전트 중심의 미래로 질서가 바뀌고 있다. 이 흐름을 선도하는 기업은 웹을 수정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새로운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며 미래를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

도로가 자동차에 맞춰 재설계됐듯, 웹도 AI에 발맞춰 진화 중이다. 다음 디지털 혁명은 기계에 의해, 기계를 위해, 기계 위에서 실행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근본적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