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 83조 원 자산 보관 기술로 기업용 지갑 시장 본격 진출

| 김민준 기자

웹3 사용자의 자산 주권 강화를 목표로 하는 암호화폐 자체 보관(custom custody) 기업 세이프(Safe)가 기관 전용 솔루션 개발을 위한 자회사 ‘세이프랩스(Safe Labs)’를 공식 출범시켰다. 새로 설립된 이 조직은 향후 기업 고객을 타깃으로 한 고급 보안 지갑 인프라 구축에 집중한다.

6일(현지시간) 미국 코인텔레그래프 보도에 따르면, 세이프랩스는 모기업 세이프가 전액 출자한 상업 자회사다. 이 조직은 세이프의 스마트 계정(Safe Smart Accounts)을 기반으로 모듈형 스마트계약 지갑 플랫폼을 기업 환경에 맞게 확장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세이프 공동 창립자이자 세이프 생태계 재단 회장인 루카스 쇼어(Lukas Schor)는 “웹3의 미래는 사용자가 본인의 디지털 자산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데 달렸다”며 “세이프랩스를 통해 보다 직관적이면서 보안성을 갖춘 기업용 자체 보관 인프라를 구축하려 한다”고 말했다.

세이프랩스는 세이프에서 기존 최고제품책임자(CPO)를 맡았던 라훌 루말라(Rahul Rumalla)가 대표를 겸한다. 그는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엔지니어링 디렉터로 근무했고, 이후 웹3 스타트업 페이퍼체인과 오터스페이스를 공동 설립한 인물로, 제품·기술 분야에서 15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했다.

루말라는 인터뷰에서 “온체인 자산을 보유하든, 고객이 온체인을 접하게 하든 간에 우리 솔루션을 필요로 하는 모든 기업이 대상”이라며 “이미 다수의 기관 투자자와 기업들이 수년 전부터 세이프를 사용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세이프랩스를 통해 고객 니즈에 더 정확히 부합하는 지갑 기능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세이프는 약 600억 달러(약 83조 4,000억 원) 규모의 디지털 자산을 보관하고 있으며, 이더리움 네트워크 전체 거래 중 약 4%를 처리하고 있다. 또한 이더리움 가상 머신(EVM) 기반 스마트계정 시장에서는 약 10%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자체 보관은 서드 파티를 통하지 않고 사용자가 직접 프라이빗 키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암호화폐 보안에 있어 핵심적인 개념이다. 특히 기관들은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2개 이상의 개인 키 승인을 요구하는 다중 서명(multisig) 방식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다중 서명 지갑도 여전히 ‘블라인드 서명’이라는 보안 취약점을 안고 있다. 복잡한 스마트계약 로직과 특수한 데이터 형식 탓에, 하드웨어 지갑이 이를 제대로 표시하지 못하고, 사용자가 사실상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채 서명을 하게 되는 구조다. 결국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 화면만 믿고 수백억 원 규모의 자산 이전을 승인하게 되는 셈이다.

이 같은 문제로 인해 사고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월 있었던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비트의 14억 달러(약 19조 4,600억 원) 해킹 사고는 세이프 지갑의 블라인드 서명 기능에 취약점이 있었던 점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개발자의 컴퓨터가 해킹되며 벌어진 일이었으며, 세이프 측은 사후 보고서를 통해 해킹 경위와 기술적 배경을 공개했다.

한편 바이낸스 공동 창업자인 창펑 자오(Changpeng Zhao)는 해당 보고서에 대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빠졌으며 일부 문제를 회피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처럼 블라인드 서명 문제는 당장 해결하기 어렵다. 세이프가 공개한 차세대 스마트계정 기반 지갑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완전히 극복하진 못했다. 이 지갑은 멀티시그 기능을 포함하고 있지만, 온체인 트랜잭션 중 다수는 여전히 블라인드 서명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세이프와 같은 솔루션 개발사와 레저, 트레저 등 하드웨어 지갑 제조사가 협업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실제 레저 CEO 파스칼 고티에(Pascal Gauthier)는 “블라인드 서명은 모두가 쓰고 있지만, 사실상 인터넷에서 공란 수표에 서명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블록체인 자산 보관 방식의 전환이 중요한 변곡점에 다다른 지금, 세이프랩스가 제시하는 엔터프라이즈용 자체 보관 솔루션이 얼마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