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제은행(BIS)이 주도한 ‘프로젝트 아고라(Project Agorá)’에서 글로벌 대형 은행들이 실제 자금을 활용한 국경 간 결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토큰화된 화폐가 금융 인프라의 핵심 영역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는 신호다.
이번 실험에는 5개 중앙은행과 JP모건, 씨티, UBS, 도이치뱅크, 스탠다드차타드 등 28개 주요 상업은행이 참여했다. 약 100만 달러(약 14억2,460만 원) 규모의 거래가 미국 달러, 유로, 영국 파운드, 일본 엔, 스위스 프랑, 한국 원화 등 6개 통화로 처리됐다.
프로젝트는 중앙은행 준비금과 상업은행 예금을 ‘토큰화’해 기업 간 결제, 은행 간 거래, 외환 결제까지 수행했다. BIS에 따르면 이 결제는 평균 약 80초 내 완료됐으며, 기존 은행 결제 시스템과 완전히 통합되지 않은 시범 환경에서도 빠른 속도를 보였다.
이번 실험은 최근 금융권에서 확산되는 스테이블코인과 자산 토큰화 흐름과 맞닿아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토큰화된 머니마켓펀드와 사모대출 상품을 내놓고 있으며, 기업들도 국경 간 결제와 자금 운용에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다만 구조는 다르다. 서클($CRCL)이나 테더처럼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프로젝트 아고라는 중앙은행 준비금과 은행 예금이라는 ‘전통적 화폐’를 토큰 형태로 전환해 사용했다.
이는 기존 금융 시스템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기존 화폐를 기반으로 디지털 효율성을 높이는 접근 방식이다.
현재 국경 간 결제는 여러 중개 은행을 거치는 ‘코레스폰던트 뱅킹’ 구조를 따른다. 각 기관이 별도의 장부를 유지하기 때문에 처리 시간과 비용이 증가하는 구조다.
반면 이번 실험에서는 토큰화된 자금을 ‘공유 원장’에 올려 모든 참여 은행이 동일한 거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결제 과정이 단순해지고 추적도 쉬워졌다는 평가다.
특히 외환 거래에서는 두 통화를 동시에 교환하는 방식이 적용됐다. 기존처럼 한쪽 결제가 끝난 뒤 다른 통화가 처리되는 구조가 아니라, 동시 교환으로 ‘결제 불이행 위험’을 줄였다.
참여 은행들은 이 플랫폼이 기존 결제 시스템을 대체하기보다 함께 작동하며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프로젝트 아고라는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이 추진하는 여러 ‘도매 금융 토큰화’ 실험 중 하나다. 핵심은 소비자용 암호화폐보다, 금융 시스템 내부의 ‘보이지 않는 결제 구조’를 개선하는 데 있다.
토큰화 기술이 실제 자금을 기반으로 작동하며 속도와 안정성을 증명한 만큼, 향후 국제 결제 인프라 전반에 점진적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제도적 정비와 시스템 통합이 병행돼야 실제 상용화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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