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리플 합의안 기각…美 법원 "시장 편의보다 법적 절차 우선"

| 손정환 기자

리플(XRP)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오랜 법적 공방이 또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양측이 제출한 공동 합의안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 속에 연방법원에서 기각되며 진정 국면을 기대하던 시장에 다시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번 결정을 내린 아날리사 토레스(Analisa Torres) 판사는 "법적 판단에 단축키는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며, 리플의 과거 위법행위와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합의안을 일축했다.

리플과 SEC는 공동으로 리플에 부과된 1억 2,500만 달러(약 1,738억 원)의 벌금을 5,000만 달러(약 695억 원)로 감경하고, 발효 중인 영구 금지명령을 철회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례적으로 같은 편에 선 모습이었지만, 토레스 판사는 민감한 항소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러한 요청은 법체계 질서를 해치는 행위라고 못 박았다. 판사는 "최종 판결을 무효화할 권리는 당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법제도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요청은 극히 드물게 허용되는 미국 민사소송법 제60(b)(6)조에 근거했다. 해당 조항은 특별한 사정 하에 판결을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이번엔 적용되지 않았다. 판사는 리플이 과거의 위법행위를 뉘우치지 않고 있으며, 제재를 유지해야 투자자 보호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SEC와 적대적이던 리플이 돌연 협력적 태도로 전환한 점 역시 커뮤니티 내에서 *은밀한 이해관계*나 *글로벌 디지털자산 전략*과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관측은 최근 리플 ETF에 대한 흥미, 캐나다·아시아 시장에서의 움직임, 각국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확장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이를 계기로 향후 리플이 글로벌 디지털 금융 인프라의 핵심 자산으로 재부상할지가 또다른 관전 포인트다.

결과적으로 이번 기각은 단순한 절차상의 거부가 아니라 리플과 SEC, 더 나아가 암호화폐 시장에 던지는 *강한 경고*로 해석된다. 법원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어떠한 법적 해결도 *공정하고 공개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시장의 편의와 정치적 타협이 사법 판단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