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준비 중이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2차 실험이 잠정 중단됐다. 예금 토큰을 중심으로 한 실거래 실험은 한창 진행되던 중이었지만, 법제화 지연과 은행권의 부담 등 현실적인 벽에 부딪힌 것이다.
CBDC는 디지털화된 원화를 의미하며, 한국은행이 주도하는 '한강 프로젝트'는 이를 실제 금융생활에 적용하는 테스트다. 올해 시작된 1차 실험에는 예금 토큰 방식이 도입됐다. 참가자들이 기존 예금을 예금 토큰으로 변환해 편의점, 카페 등에서 결제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2차 실험을 앞두고 돌연 보류 결정이 내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CBDC, 스테이블코인, 예금 토큰 개념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 법제화가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한은도 전략을 재정비하려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국회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고, 은행들도 비은행 업체와의 협업을 논의 중이다.
한은은 7개 시중은행과 함께 실험을 진행했으며, 각 은행당 평균 50억 원 안팎의 비용을 들였다. 전체 예산만 350억 원에 달한다. 은행권이 실질적인 투자에 나선 만큼, "단순 실험 말고 향후 어떻게 상용화될지 로드맵을 제시해 달라"는 요구가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이에 한은은 일부 부담을 떠안는 형태로 2차 실험 예산을 제안했지만, 끝내 추진 동력을 확보하진 못했다.
예금 토큰은 본질적으로도 스테이블코인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치를 법정화폐에 연동한 암호화폐다. 변동성이 큰 기존 암호화폐와 구분되는 이 시스템은 실제 결제나 송금 등 실생활에 사용되기 위한 기초 성격을 갖췄다. 은행 중심 예금 토큰 도입 역시 이런 맥락에서 추진돼 왔다.
CBDC 프로젝트가 멈춘 가운데, 은행들은 오히려 사업 방향을 스테이블코인으로 돌리는 분위기다. 일부는 블록체인 분야 선도 기업인 해시드 등과 협력해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발행 주체가 은행이 될지, 빅테크나 핀테크 기업이 될지도 모른다. 둘 다 대비 중"이라고 말했다.
결국 한국은행의 디지털원화 실험은 일시 멈췄지만, 뒤를 이어 유사한 기능을 가진 스테이블코인 논의는 민간에서 더 빠르게 속도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