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은행권과 암호화폐 산업 간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갈등이 정치권으로 번지며 규제 법안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졌다.
11일 DL뉴스에 따르면 미국 은행권 로비 단체인 미국은행협회(ABA)는 워싱턴에서 열린 연례 정상회의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존재적 위협’이라고 주장하며 강한 우려를 제기했다. 이날 행사에는 약 1400명의 금융 업계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캐시 오언 ABA 차기 회장은 “예금이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특히 지방과 지역사회 금융기관에 매우 큰 피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ABA의 디지털자산 전문가 브룩 이바라도 “디지털 지갑에 보관된 스테이블코인은 지역사회 경제 성장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은행권의 이러한 공세는 암호화폐 규제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클래리티 법안(Clarity Act)’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나왔다. 특히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 환경이 불확실해지면서 법안 추진 일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공화당은 선거 지형이 쉽지 않은 상황이며 당내 의견 분열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 보상 구조를 둘러싼 논쟁이 법안 통과를 가로막는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공화당 상원의원 톰 틸리스는 은행권이 제기한 ‘예금 유출’ 우려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은 법안뿐 아니라 암호화폐 거래소 크라켄과 미 연방준비제도(Fed)에도 비판을 제기했다. 크라켄이 수천 개 은행과 신용조합이 사용하는 동일한 결제 네트워크 접근 권한을 얻은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은행권의 우려는 단순한 정치적 논쟁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암호화폐 산업이 점차 법적·규제적 인정 범위를 넓혀가면서 전통적으로 은행이 지배해 온 약 23조 달러 규모의 미국 대출 시장 영역에 진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갈등의 핵심은 스테이블코인이 이자를 지급할 수 있는지 여부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지니어스 법(Genius Act)’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이자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는 고객들이 더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디지털 달러로 예금을 옮길 것을 우려한 은행권 요구를 반영한 조치였다.
다만 거래소나 암호화폐 기업 같은 제3자 플랫폼이 스테이블코인 보유와 관련된 보상이나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는 여전히 논쟁이 남아 있었다. 은행권은 이 같은 ‘우회적 수익 제공’ 가능성을 막기 위해 클래리티 법안에서 관련 규정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반면 암호화폐 업계는 이미 합의된 규제를 다시 뒤집으려는 시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절충안도 제시된 바 있다. 해당 초안은 단순 보유에 따른 이자 지급은 금지하되 결제·송금·이체·디파이 유동성 공급 등 특정 활동에 연계된 보상은 허용하는 방안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상원 표결을 앞두고 코인베이스 CEO 브라이언 암스트롱이 ‘수동적 이자(passive yield)’ 금지 조항에 반대하며 지지를 철회하면서 합의는 무산됐다. 이후 상원 은행위원장 팀 스콧은 표결을 무기한 연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스테이블코인 규제 논쟁에 직접 개입했다. 그는 “지니어스 법이 은행들에 의해 위협받고 약화되고 있으며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미국은 가능한 한 빨리 시장 구조 규제를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전통 은행 중심 금융 구조에 도전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MNEE의 CEO 론 타터는 “스테이블코인은 은행 중심 모델에 도전하는 구조”라며 대통령의 공개 지지가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 관점에서 논의를 재편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물자산 토큰화 마켓플레이스 tx의 최고법률책임자이자 전 SEC 고문인 애슐리 에버솔 역시 대통령의 영향력을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은 다양한 정책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다만 “대통령 지지의 영향력은 당시 정치적 지지도와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은행권은 스테이블코인을 위협적인 경쟁 산업으로 보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백악관은 오히려 암호화폐 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향후 정책 방향을 둘러싼 충돌이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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