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권거래소(NYSE)가 올해 안에 토큰화 주식 거래 플랫폼을 출시한다. 200년 넘게 유지돼 온 주식시장의 작동 방식 — 거래 시간, 결제 구조, 자산의 형태 — 을 근본부터 다시 쓰겠다는 선언이다. 24시간 거래, 소수점 단위 매매, 즉시 결제. 지금까지 암호화폐 시장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이 세계 최대 증권거래소의 플랫폼 위에서 실현되려 하고 있다.
이 변화의 배후에는 미국 규제 환경의 전면적 전환이 있다. 디지털 자산 전반을 적대시했던 게리 겐슬러 전 SEC 위원장 시절, 이 같은 시도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판이 바뀌었다. 친(親)크립토 성향의 폴 앳킨스가 SEC 수장에 앉았고, 금융회사의 스테이블코인 취급을 허용하는 지침이 나왔으며, 디지털 자산 보유에 따른 자본 부담도 완화됐다. 의회는 스테이블코인의 법적 기준을 명문화한 GENIUS법을 통과시켰다. 제도가 시장을 열어젖힌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NYSE 플랫폼의 본질이다. 현재 시장에 유통 중인 토큰화 주식 상품 — 그 규모가 9억 달러에 달한다 — 의 상당수는 법적으로 진짜 주식이 아니다. 주식과 동일한 수익을 돌려주겠다는 계약을 토큰으로 포장한 파생상품이며, 미국법상 기관투자자에게만 판매가 허용된다. NYSE의 플랫폼은 이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동일한 종목 코드를 가진 실제 주식을 블록체인 위에서 거래한다. 포장이 아니라 본질이 달라졌다.
이 플랫폼은 블록체인을 쓰되 탈중앙화와는 거리가 멀다.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되 암호화폐를 거래하지 않는다. SEC가 규율하는 정식 증권을 다루되, 크립토가 만들어낸 사용자 경험을 이식한다. 크립토의 철학은 없으나 크립토가 바꿔놓은 기대는 살아 있다. 전통 금융이 디지털 자산의 외형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진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토큰증권(ST) 제도화 논의가 시작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거래소 참여 여부조차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제도적 윤곽만 그리는 사이, 세계 최대 거래소는 올해 안에 시장을 열겠다고 공언했다. 논의가 끝날 때쯤 글로벌 시장의 판은 이미 굳어져 있을지 모른다.
제도가 시장을 이끌지 못하면 시장이 제도를 비껴간다. 그것이 역사가 반복해서 보여준 진실이다. 주식시장의 유령은 이미 깨어났다. 우리가 서류를 검토하는 사이, 그들은 인프라를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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