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투자 사이클의 위험 신호는 빅테크의 투자 중단보다 은행·벤처캐피털·국부펀드·연기금 등 자본공급자의 유동성 변화에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은택 KB증권 이사는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기자간담회에서 “빅테크는 AI 투자를 멈추지 못해도, 자본 공급자는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올해 글로벌 증시를 이끈 AI 설비투자 흐름이 후반부로 접어들었고, 다음 확인 지점은 자금을 대는 쪽의 태도라는 설명이다.
이 이사는 지난달 초 AI·반도체 관련주가 하락한 뒤 AI 설비투자 지속성에 대한 의심이 커졌다고 짚었다. 다만 빅테크의 투자 중단 가능성은 낮게 봤다.
그는 “빅테크의 투자 중단을 우려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다. 그럴 가능성은 작다”며 “다만 은행이나 벤처캐피털, 국부펀드, 연기금 등 자본공급자는 멈출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술 경쟁을 벌이는 기업과 투자 손익을 따지는 자금 공급자는 의사결정 구조가 다르다는 뜻이다.
이 이사는 빅테크와 자본공급자의 AI 투자 비율을 6대4 정도로 판단했다. 기업은 기술 경쟁과 매몰비용 때문에 투자를 쉽게 접기 어렵지만, 자본공급자는 원금 손실 위험을 더 직접적으로 따진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를 보면 기업이 먼저 투자를 멈춰서 버블이 붕괴된 경우는 없다”며 “빅테크와 달리 자본공급자는 원금 손실 위험이 있어 멈출 수 있다”고 말했다. AI 투자 논쟁의 초점이 기업의 투자 의지에서 금융 여건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해석이다.
핵심 변수로는 금리가 제시됐다. 이 이사는 자본공급자가 자금을 거둬들일 위험 요인으로 경기 둔화, 기업 이익 감소, 금리 상승을 들었고, 이 가운데 금리 상승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봤다.
그는 “자본공급자는 통상 경기 둔화보다는 금리 상승에 먼저 돌아선다”며 “금리가 오르면 붕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지면 위험자산에 머무를 유인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 이사는 1930년대 대공황,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2000년대 닷컴버블 붕괴의 공통점으로 금리의 추세적 상승을 들었다. 이어 인플레이션도 함께 봐야 할 변수로 제시했다.
그는 “물가 상승은 바둑에서의 외통수와 같다. 물가가 오르면 긴축을 안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가 다시 오르면 통화정책이 완화보다 긴축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장기 투자자금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취지다.
관찰 지표로는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언급됐다. 이 이사는 “이 금리가 5%를 넘으면 자본공급자가 안전한 수익 확보로 돌아설 수 있다”며 “금리가 올라가면 거대한 자금 흐름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AI 투자 사이클을 기술 수요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신용과 자금조달 여건으로 함께 봐야 한다는 의미다. AI 데이터센터, 전력 설비, 반도체 공급망처럼 장기간 자금이 묶이는 투자는 금리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크립토 시장에서도 같은 논점은 유동성 문제로 이어진다. 본지는 앞서 AI 인프라 투자 열기가 금융권의 신용 사이클과 맞물려 있다는 아서 헤이즈의 주장을 보도했다. 당시 헤이즈는 AI 관련 부채와 달러 유동성이 비트코인(BTC)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다만 이번 KB증권 간담회 발언만으로 AI 투자 둔화가 BTC 가격에 미칠 영향을 단정할 수는 없다. 국내 증시 관점에서는 AI 설비투자 규모와 주도주 논쟁이 다시 커졌다는 앞선 보도처럼 반도체와 메모리 공급망의 투자 흐름도 함께 걸려 있다.
이번 발언은 AI 투자의 다음 확인 지점이 빅테크의 투자 의지보다 금리, 물가, 자본공급자의 위험 선호에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둔다. 이 이사가 제시한 단기 관찰 지표는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 5% 돌파 여부와 인플레이션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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