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가르드, 유럽 성장 모델 약화와 통합 필요성 경고

| 강이안 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이 미국 중심 국제질서의 후퇴와 무역 불확실성을 유럽 경쟁력 약화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유럽이 뒤처지지 않으려면 단일시장과 자본시장, 결제 인프라를 더 깊게 묶어야 한다는 메시지다.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 ECB 총재는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국제비즈니스위원회 행사에서 유럽의 전후 성장 모델을 떠받쳐 온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고 CNBC는 보도했다.

라가르드는 유럽 성장 모델의 축으로 확대된 세계무역, 저렴한 에너지에 기대는 제조업,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유지된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꼽았다. 그는 이 세 축이 동시에 약해지고 있다고 봤다.

라가르드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2500건이 넘는 무역 제한 조치가 도입됐다고 언급했다. 무역 장벽 확대가 수출과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유럽 경제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무역 불확실성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CNBC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EU)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20%에서 15%로 낮췄지만, 협정의 지속성은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이번 발언은 기준금리나 단기 통화정책보다 산업·제도 경쟁력 논의에 가깝다. 유럽이 세계무역, 에너지, 안보 질서 변화에 동시에 노출된 만큼 성장 모델 자체를 다시 짜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풀이된다.

핵심은 AI다. 라가르드는 유럽이 첫 번째 디지털 전환에서 뒤처졌던 전례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플랫폼 경쟁에서 밀린 경험을 AI 인프라와 자본시장 통합 논의로 연결한 셈이다.

CNBC가 전한 수치로는 유럽의 34개 상장 기술기업 합산 시가총액은 약 1조3700억유로였다. 미국의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세븐 시가총액은 23조달러(약 3경2604조원)를 넘었다.

이 격차는 단순한 자본 규모 차이만 뜻하지 않는다. 기술기업이 국경을 넘어 커지는 속도, 자금 조달 구조, 규칙의 일관성이 함께 작용한다.

세계경제포럼은 7월 8일 공개한 글에서 유럽이 경쟁력을 지키려면 단일시장의 복잡성을 낮추고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스타트업 자금 조달을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유럽경제사회위원회(EESC)도 기업들이 과도한 규제와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며 데이터와 AI 규제가 혁신을 막기보다 뒷받침해야 한다고 밝혔다.

단일시장은 EU 안에서 상품, 서비스, 자본, 사람의 이동 장벽을 낮춘 시장 구조다. 그러나 실제 기업 활동에서는 국가별 규제와 세제, 금융시장 차이가 남아 있어 규모의 경제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ECB의 문제의식은 디지털 자산 인프라 논의와도 이어진다. 라가르드는 6월 15일 ECB 연설에서 토큰화, 디지털 유로, 국경 간 결제를 유럽 금융시장의 분절을 줄이는 수단으로 제시했다.

토큰화는 자산이나 권리를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토큰으로 옮기는 방식이다. 라가르드는 토큰화 금융이 중앙은행 화폐로 결제되지 않으면 민간 네트워크별로 쪼개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금융 통합 논의는 은행 규제와도 맞닿아 있다. 본지는 앞서 EU가 은행 자본규제의 전환 규정과 적용 방식을 손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쟁점도 규제 폐지가 아니라 통합적이고 효율적인 적용 방식이었다.

크립토 시장에서 이번 발언은 단기 가격 재료보다 정책 방향을 읽는 신호에 가깝다. 유럽이 AI와 자본시장 통합을 경쟁력 문제로 다루는 만큼, 디지털 유로와 토큰화 결제망도 산업정책의 일부로 놓일 수 있다.

다만 이번 발언이 유럽 증시나 가상자산 가격에 미친 즉각적 영향은 확인되지 않았다. 시장의 초점은 유럽이 단일시장 통합, AI 인프라 확대, 자본시장 정비를 실제 제도 개편으로 옮길 수 있는지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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