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은행 자본규제의 핵심 안전장치인 ‘아웃풋 플로어(output floor)’의 전환 규정과 적용 방식을 손질한다. 공식적으로 제시된 방향은 제도 폐기가 아니라 일부 규정의 조정과 명확화다.
EU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7월 17일 발표한 은행 경쟁력 관련 통신에서 유럽 은행산업을 더욱 통합적이고 효율적인 구조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아웃풋 플로어와 무등급 기업대출, 주택담보대출에 적용되는 전환 규정을 명확히 제시한다는 방침도 담았다.
이번 조치는 유럽 은행의 경쟁력 강화 논의가 바젤Ⅲ 이행 방식으로 확대됐다는 의미다. 은행권은 규제가 자본 운용과 대출 여력을 제약한다고 주장하지만 감독당국은 금융위기 이후 마련한 안전판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아웃풋 플로어는 은행이 내부모형으로 계산한 위험가중자산이 표준화 방식으로 산출한 위험가중자산의 72.5%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는 장치다. 내부모형을 이용해 자본요건을 지나치게 낮추는 일을 막고 은행 간 자본비율의 비교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는 금융위기 이후 추진한 바젤Ⅲ 개혁의 하나로 아웃풋 플로어를 2017년 확정했다. EU는 2023년 은행 패키지에 이 제도를 반영하고 2032년까지 단계적으로 전면 적용하기로 했다.
통상 은행이 내부모형으로 산출하는 위험가중자산이 줄어들면 같은 자산을 보유하더라도 필요한 자기자본 규모가 작아진다. 아웃풋 플로어는 이 차이에 하한을 두기 때문에 내부모형 활용도가 높은 은행일수록 적용 방식에 민감할 수 있다.
유럽은행감독청(EBA)은 2020년 보고서에서 바젤Ⅲ 개혁으로 EU 은행의 최소 필요 Tier 1 자본이 15.4% 증가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 가운데 아웃풋 플로어가 미치는 영향은 6.2%로 제시했다.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위원회는 4월 발표한 성명에서 아웃풋 플로어와 부실채권 관련 안전판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럽 은행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은 자본규제 자체보다 단일시장의 단절과 복잡한 규제 구조에 있다는 입장이다.
ECB는 규제 체계를 단순화하더라도 금융위기 이후 회복한 은행권의 복원력을 약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자본요건을 직접 낮추기보다 국가별로 나뉜 시장과 중복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닐 에쇼(Neil Esho) 전 바젤은행감독위원회 사무총장도 EU가 바젤 체계에서 이탈하면 국제 규제 공조와 유럽 은행의 대외 신뢰가 약화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다만 에쇼 전 사무총장은 3월 31일 퇴임해 이번 논의에서 현직 당국자를 대표하지 않는다.
바젤은행감독위원회는 에쇼 전 사무총장의 후임으로 벤 걸리(Ben Gully)를 임명했다. 걸리 차기 사무총장의 임기는 8월 14일 시작될 예정이다.
은행권은 규제 조정이 실물경제에 공급할 자금을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유럽은행연합(EBF)은 집행위의 방향을 환영하며 규제와 건전성 체계를 단순화해야 은행의 성장·투자 지원 역량이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유럽금융시장협회(AFME)도 유럽 은행이 자본을 국경을 넘어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룹 차원의 자본·유동성 운용을 제약하는 규정을 조정해야 한다는 요구다.
로이터는 집행위의 은행 경쟁력 보고서에 국경 간 은행 합병과 그룹 단위의 자본·유동성 운용을 쉽게 하는 방안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크리스티안 제빙(Christian Sewing) 도이체방크(Deutsche Bank) 최고경영자는 아웃풋 플로어 조정과 무역금융 부담 완화, 소프트웨어 투자 규정 개선을 요구했다.
향후 논의의 핵심은 규제 단순화가 자본 안전판의 약화로 이어지는지를 가리는 데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아웃풋 플로어 전환 규정을 포함한 구체적인 은행 경쟁력 강화 입법안을 2027년 1분기에 제시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