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BTC)의 장기 투자 논리가 최근 조정 이후에도 유지된다는 블랙록의 분석이 나왔다. 정부부채와 재정적자 확대, 법정화폐 구매력 저하 우려가 BTC의 고정 공급 구조를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블랙록은 17일 보고서 ‘Re-Underwriting Bitcoin: Still a Portfolio Diversifier’에서 BTC가 높은 변동성을 가진 자산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통화 대체재이자 포트폴리오 분산 수단으로 검토될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로버트 미치닉(Robert Mitchnick) 블랙록 디지털자산사업 책임자와 윌 수(Will Su) 블랙록 디지털자산리서치 책임자가 작성했다.
보고서의 핵심은 희소성이다. 블랙록은 정부부채와 재정적자가 늘어나는 환경에서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공급량을 임의로 늘릴 수 없는 자산의 전략적 가치가 커질 수 있다고 봤다.
금과 BTC는 모두 공급이 제한된 자산이라는 점에서 비교된다. 다만 금의 희소성은 지질 조건과 채굴 비용에서 나오고, BTC의 희소성은 코드와 수학적 규칙에서 나온다는 차이가 있다.
블랙록은 법정화폐의 장기 구매력 약화도 함께 짚었다. 보고서는 20세기 초 주요 경제권이 발행한 법정화폐가 금 기준으로 현재까지 99% 넘는 가치를 잃었다고 설명했다. 튀르키예, 아르헨티나, 브라질, 러시아 등 일부 국가는 고인플레이션과 통화 재설정을 여러 차례 겪었다는 점도 언급했다.
BTC가 글로벌 유동성과 완전히 분리된 자산이라는 뜻은 아니다. 블랙록은 지난 10년간 BTC의 성과가 미국, 유로존, 중국, 일본, 영국을 포함한 주요 경제권의 광의통화(M2) 변화와 일정한 관련성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다만 글로벌 M2를 BTC 가격의 직접 예측 지표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상관관계 분석도 보고서의 주요 축이다. 블랙록은 지난 10년간 BTC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의 평균 상관계수가 약 0.18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BTC가 단기적으로 위험자산과 함께 움직일 수 있지만, 장기 데이터에서는 주식시장과 같은 방향으로만 움직인 자산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단기 충격 국면에서는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블랙록은 시장이 급격히 디레버리징될 때 BTC가 주식과 함께 하락할 수 있고, 레버리지 청산이 집중되면 가격 변동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이런 특성을 ‘이중적 성격’으로 정리했다.
이 같은 판단은 BTC가 장기 분산 자산이라는 분석과 단기 청산 위험이 같은 시장 안에 공존한다는 본지의 앞선 보도와도 맞닿아 있다. 블랙록의 결론은 BTC의 위험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변동성에도 장기 분산자산 논리가 검토 대상에 남아 있다는 데 가깝다.
시장 구조 변화도 변동성 완화 요인으로 제시됐다. 블랙록은 BTC의 연간 변동성이 10년 전에는 100%를 자주 넘었지만, 현물·선물·옵션·상장거래상품(ETP) 시장이 커지면서 장기 변동성이 낮아졌다고 밝혔다.
시장 인프라는 단계적으로 확대됐다. 보고서는 2016년 무기한 선물, 2017년 시카고상품거래소(CME) BTC 선물, 2020년 CME BTC 옵션, 2024년 미국 현물 BTC ETP 출시를 주요 사례로 들었다. 현물과 파생상품, ETP가 함께 커지면서 기관 투자자의 차익거래, 헤지, 위험관리 수단도 늘었다는 설명이다.
포트폴리오 분석에서는 소규모 편입 효과가 언급됐다. 블랙록은 미국 60대40 주식·채권 포트폴리오에서 주식 비중 일부를 줄여 BTC를 1~2% 넣는 10년 역사적 회귀분석을 제시했다.
기존 60대40 포트폴리오의 샤프비율은 0.81이었다. BTC를 1% 편입했을 때는 0.90, 2% 편입했을 때는 0.96으로 높아졌다. 최대 낙폭은 기존 포트폴리오가 약 20.3%, BTC 1% 편입 포트폴리오가 20.6%, 2% 편입 포트폴리오가 20.9%였다.
샤프비율은 감수한 위험 대비 수익률을 보는 지표다. 수치가 높을수록 같은 위험에서 더 나은 성과를 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만 BTC 자체의 변동성이 큰 만큼, 작은 편입 비중도 전체 포트폴리오의 수익과 위험 특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수치는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가정 분석이다. 블랙록도 보고서에서 역사적 회귀분석은 미래 성과를 보장하지 않으며, 실제 편입 여부와 비중은 투자자의 목표, 위험 감내 수준, 규제 요건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 투자자에게 이 보고서가 주는 의미는 BTC를 단순 가격 등락이 아니라 거시 환경과 포트폴리오 구조 속에서 해석했다는 데 있다. 앞서 미국 재정적자 확대가 BTC의 통화가치 희석 헤지론을 다시 시험대에 올렸다는 본지 보도처럼, 재정 부담과 법정화폐 신뢰 문제는 BTC 투자 논리에서 계속 반복되는 축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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