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에 대응해 각국 정부가 유류세 인하와 현금 지원 등 긴급 재정 지출을 확대하면서, 세계 경제의 또 다른 위험 요인으로 국가부채 부담이 빠르게 부각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5일(현지시간) 이런 흐름을 전하며, 전쟁 충격을 줄이기 위한 단기 처방이 오히려 장기 재정 불안을 키울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독일과 이탈리아는 유류세를 2개월간 낮추는 조치를 내놓았고, 이에 각각 18억달러, 11억8천만달러의 재정이 투입된다. 캐나다도 9월 7일까지 유류세를 한시 중단해 17억달러의 세수 감소를 감수하기로 했고, 호주는 약 2억9천만달러 규모의 유류세 인하를 시행했다. 그리스는 3억5천400만달러 규모의 긴급 패키지를 통해 저소득 운전자와 오토바이 소유자에게 현금을 주는 ‘연료 패스’를 도입했다. 이처럼 수십 개 나라가 세금 인하, 에너지 보조금, 가계 현금 지급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이런 지원이 대부분 정부 지출 확대나 세수 감소를 동반한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재정 정책이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꼭 필요한 계층과 부문에는 지원하되, 국가 재정을 한계 상황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뉴욕타임스도 정부가 대규모 지원 프로그램을 차입으로 메울 경우, 전쟁에 따른 즉각적인 경제 충격이 더 큰 재정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의 운항이 정상화되더라도 에너지와 비료, 각종 원자재 공급망의 후유증은 수개월에서 수년 이어질 수 있어,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 속에 추가 지원 요구가 계속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지금은 과거 위기 때보다 정책 여력이 더 약해졌다는 점도 부담이다. 코로나19 시기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도 각국은 대규모 재정 지원으로 충격을 흡수했지만, 그 결과 이미 많은 나라의 재정 상태가 나빠진 상황이다. IMF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공공부채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94% 수준이며, 2029년에는 10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IMF는 지난해 세계 경제 성장세가 비교적 견조했음에도 재정 건전성 회복에는 의미 있는 진전이 없었고, 많은 나라에서 재정적자가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가운데 부채와 이자 비용이 함께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재정 압박은 단순히 이번 전쟁 때문만은 아니다. 유럽만 해도 고령화 대응 비용, 저탄소 체계 전환 비용, 국방비 확대가 동시에 겹쳐 구조적으로 돈 쓸 일이 많다. 여기에 무역 동맹의 분열, 인공지능(AI)에 따른 산업 변화, 중앙은행보다 민간 투자자에게 국채를 더 많이 소화시키는 금융 구조까지 재정의 불안 요인으로 지목된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같은 맥락에서 회원국들에 일시적이고 선별적인 지원만 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14일 이런 원칙을 강조했고, EU 집행위는 긴급 조치마다 명확한 종료 시점을 두도록 각국과 협의 중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금리 부담이 현실화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더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퍼지면서 국채 금리가 상승하고, 이는 정부의 이자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영국 정부가 14일 발행한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4.92%로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결국 각국 정부는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흔들리는 민생을 당장 떠받쳐야 하는 동시에, 중장기적으로는 감당 가능한 재정 범위를 지켜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게 됐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지원 방식이 보편 지원보다 취약계층 중심의 선별 지원으로 이동하고, 각국이 재정 지출의 종료 시점과 재원 조달 방식을 더 엄격하게 따지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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