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중동 분쟁 국면에서 각국의 전략비축유가 크게 줄어든 만큼, 미국과 이란의 휴전이 다시 흔들릴 경우 세계 경제가 이전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에르-올리비에 구랭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전략비축유 보유량이 상당히 낮아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전략비축유는 전쟁이나 공급 차질 같은 비상 상황에 대비해 정부가 비축해두는 원유를 뜻하는데, 이번 중동 전쟁 과정에서는 이 물량을 빠르게 풀고 정유사들도 생산을 조정하면서 국제유가 급등을 막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시장에서는 한때 전 세계 원유 공급의 10~15%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실제 공급 감소는 약 3% 수준에 머물렀고 유가 상승 폭도 예상보다는 제한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미 비축 여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휴전이 깨지고 석유 공급 차질이 다시 발생하면, 각국 정부가 쓸 수 있는 대응 수단이 예전보다 훨씬 좁아진다. 이는 단순히 유가 상승에 그치지 않고 물가, 소비, 기업 비용, 금융시장 심리 전반을 동시에 압박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에너지 가격은 세계 경제 전반의 비용 구조와 직결돼 있어, 공급 충격이 재연되면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하방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휴전은 최근 다시 시험대에 오른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상선을 공격한 것을 휴전 위반이라고 비판했고, 미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날 이란의 미사일·드론 저장시설과 해안 레이더 기지 등을 공습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산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라서, 이 일대 긴장이 높아지면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곧바로 국제시장으로 번지는 구조다.
구랭샤는 에너지 문제와 함께 세계 무역 질서의 변화도 짚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이후 각국이 미국 밖에서 새로운 교역망을 넓히는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연합(EU)이 오랜 기간 지연됐던 중남미, 인도와의 무역협정을 최근 잇따라 마무리한 것은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새로 체결되는 협정들 가운데 미국이 빠진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또 관세와 경제 제재는 단기적으로 압박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상대국이 우회 경로를 찾거나 자체 혁신과 대체 거래망 구축에 나서면 장기적으로 효과가 약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출신 경제학자인 구랭샤는 2022년부터 맡아온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직을 떠나 다음 주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로 복귀할 예정이다. 그의 이번 발언은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과 세계 교역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는 국면에서, 에너지 비상 대응 여력과 국제 공급망의 안정성이 앞으로 세계 경제의 핵심 변수로 떠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휴전 유지 여부와 산유국 공급 상황, 주요국의 무역 블록 재편 속도에 따라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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