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보험부채를 계산할 때 쓰는 핵심 가정을 더 엄격하고 객관적으로 관리하는 새 기준을 29일부터 시행하면서, 보험사 회계와 건전성 관리 방식이 한층 보수적으로 바뀌게 됐다.
금융위원회는 29일 계리감독 선진화 방안의 후속 조치로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새 국제회계기준인 아이에프알에스17(IFRS17) 체계에서 보험사의 자산과 부채를 보다 정확하게 평가하려는 취지다. 보험사는 손해율과 사업비 같은 계리가정을 바탕으로 앞으로 들어오고 나갈 현금흐름을 추정한 뒤 이를 현재가치로 환산해 보험부채를 계산하는데, 이 가정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면 실제보다 부채가 적게 잡힐 수 있다.
당국은 이런 왜곡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손해율과 사업비 산정 기준을 구체화했다. 손해율은 보험금이 얼마나 나갈지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인데, 특히 담보별 경과기간에 따라 손해가 어떻게 늘거나 줄지를 추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금융당국은 신규 담보와 비실손 갱신형 보험상품에는 보다 보수적인 손해율 가정을 적용하도록 했고, 사업비에는 물가상승률을 반영하게 했다. 또 비용이 발생하는 기간을 회사가 임의로 짧게 잡아 부담을 줄이는 방식도 막기로 했다. 아울러 계리가정 관련 사항을 문서로 남기고 자체 점검과 관리체계를 갖추도록 했으며, 이를 감독당국에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계리가정 보고서 제도도 연내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을 통해 도입할 계획이다.
건전성 규제의 핵심인 지급여력비율(K-ICS) 내부모형 승인 기준도 이번에 더 명확해졌다. 지급여력비율은 예상치 못한 손실이 발생했을 때 보험사가 이를 감당할 자본 여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지금까지는 감독당국이 정한 표준모형을 주로 썼지만, 내부모형을 쓰면 회사별 상품 구조와 위험 특성을 더 세밀하게 반영할 수 있다. 다만 그만큼 자의적 해석의 여지도 있는 만큼, 보험사는 사전에 감독당국과 협의한 뒤 승인 신청서를 내고 심사와 승인을 받아야 한다. 내부모형을 적용하기 직전 영업연도부터는 표준모형과 내부모형에 따른 요구자본을 함께 계산해 분기마다 보고해야 하며, 통계적 적정성, 검증체계, 문서화 수준, 실제 의사결정 반영 여부까지 종합적으로 점검받는다.
이와 함께 국내 영업 보험사에는 자체위험 및 지급여력 평가체제, 즉 오르사(ORSA) 도입도 의무화됐다. 오르사는 회사가 스스로 중장기 위험을 점검하고 자본 적정성을 평가하는 제도로, 단순히 규제 비율을 맞추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경영진과 이사회가 직접 위험 관리 책임을 지도록 하는 장치다. 다만 수입보험료 5천억원 이하 보험사와 외국보험사 국내지점 등은 준비 기간을 고려해 시행을 유예한다. 당국은 앞으로 이사회와 경영진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제3자와 감독당국이 이를 검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공시도 강화할 방침이다.
개정안은 원칙적으로 6월 말 결산부터 적용하고, 일부 사항은 12월 말부터 시행한다. 금융당국은 이번 조치로 계리가정의 중립성, 보수성, 비교 가능성이 높아지고 보험사의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 역량도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보험사들이 단기 실적보다 부채의 실질 위험과 자본 적정성을 더 엄격하게 관리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중장기적으로는 보험산업 전반의 신뢰도를 높이는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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