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대부자론 재부상, 1763년 위기 소환

| 김하린 기자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역할이 다시 정책 논쟁의 중심에 섰다. 1763년 암스테르담 금융위기와 2023년 은행 불안을 함께 보면, 위기 때 필요한 것은 제도 명칭보다 실제로 쓸 수 있는 유동성 장치라는 지적이다.

스티븐 마이호르(Steven Maijoor) 네덜란드중앙은행(DNB) 집행이사는 2026년 6월 18일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시장운영위원회 회의 연설에서 “정상 상황에서 중앙은행 운영을 이용하면 감독 당국이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인상이 은행들에 있을 수 있다”며 “이는 전혀 그렇지 않으며, 시장의 낙인을 피하기 위해 이 오해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평상시 중앙은행 유동성 수단을 쓰는 일이 부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지면, 정작 위기 때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마이호르 집행이사는 1763년 7월 29일 암스테르담 은행가 레인더르트 피터르 더 노이프빌(Leendert Pieter de Neufville)의 파산을 출발점으로 들었다. 7년전쟁 종료 뒤 곡물 가격이 몇 달 만에 75% 넘게 떨어졌고, 레버리지를 동원한 곡물 거래가 실패하면서 암스테르담과 함부르크로 연쇄 부도가 번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당시 위기의 핵심 결핍을 효과적인 최종대부자 부재로 봤다. 레버리지, 만기 불일치, 복잡한 금융상품, 상호연결성, 유동성 경색이 결합하면 금융불안은 국경을 넘는다. 이 대목은 오늘날 은행 유동성 관리와 중앙은행 운영체계 논의로 이어진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과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uisse) 사태도 같은 맥락에서 제시됐다. 마이호르 집행이사는 중앙은행이 긴급 유동성 지원 수단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짚었다. 스위스국립은행(SNB)이 크레디트스위스에 긴급유동성지원(ELA)을 제공했지만, 담보를 제때 내놓는 준비 상태가 쟁점이 됐다는 것이다.

담보 사전배치가 그래서 중요해졌다. 마이호르 집행이사는 2023년 이후 미국 은행들이 1조 달러(약 1378조원) 규모의 담보를 사전배치했다고 말했다. 마이클 배(Michael S. Barr) 당시 연방준비제도 부의장도 2024년 연설에서 미국 은행권이 1조 달러 넘는 추가 담보를 배치했다고 밝혔다.

다만 처방은 단순하지 않다. 마이호르 집행이사는 담보 사전배치 요구가 강해질수록 복원력은 높아질 수 있지만 은행의 유연성은 줄어들 수 있다고 봤다.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가 아니라 우선대부자처럼 보일 위험도 함께 제기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2026년 6월 시장위원회 자료에서 중앙은행들이 팬데믹, 물가 재상승, 시장구조 변화 이후 대출·재대출 장치를 재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BIS는 담보 사전배치와 정기 테스트가 운영 준비를 높일 수 있지만, 중앙은행 의존을 키우지 않도록 가격, 담보, 공개 방식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뉴욕연방준비은행 연구는 2014년부터 2024년까지 할인창구 이용 낙인이 뚜렷했고, 2023년 은행 불안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분석했다. 중앙은행 시설이 있어도 은행이 실제 사용을 꺼리면 위기 대응력은 떨어진다. 마이호르 집행이사의 발언은 이 간극을 줄여야 한다는 메시지에 가깝다.

이번 연설은 비트코인(BTC), 스테이블코인, 블록체인을 직접 다루지 않았다. 한국 크립토 독자에게 닿는 지점은 자산 가격보다 중앙은행 유동성 장치와 담보 관리다. 중앙은행 화폐를 토큰화 금융과 연결하려는 유럽 논의가 커질수록, 위기 때 어떤 담보를 어떤 절차로 중앙은행 유동성에 연결할 수 있는지가 별도 쟁점으로 남는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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