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자산, 이제 국가가 답할 차례다.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는 본지 기고를 통해, 새정부가 디지털경제 주도권 확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5회에 걸쳐 제시한다.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디지털 경제의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중앙집중적 정책 설계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특히 디지털자산 산업은 물리적 인프라보다는 제도적 유연성과 정책 실험성이 중요한 분야로, 지역균형 발전과 산업 육성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부산, 인천, 대구 등 주요 거점 도시에 ‘지역특화형 디지털자산 특별경제구역’(이하 디지털자산 특구)을 지정할 것을 제안한다.
현재 운영 중인 부산 블록체인 특구는 기술 중심의 실증 프로젝트에 국한되어 있어, 디지털자산 시장 형성이나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제도적 실험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블록체인과 디지털자산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이다. 단순한 기술 실증을 넘어 디지털자산의 발행, 유통, 거래, 결제 등 전 과정을 포괄할 수 있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글로벌 흐름에 발맞춘 산업 기반 조성은 물론 규제 유연화와 자본 유입, 기업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창출할 수 있다.
디지털자산 특구는 블록체인, 가상자산, ICO, 스테이블코인, 토큰증권(RWA/STO) 등 첨단 금융 및 데이터 기반 산업의 테스트베드이자 혁신 클러스터로 기능할 수 있다. 이러한 특구는 단순한 세제 혜택을 넘어, 새로운 제도 실험이 가능한 정책 샌드박스의 역할을 수행하며, 대한민국의 제도적 유연성과 글로벌 수용 능력을 입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첫째, 디지털자산 특구는 지역균형 발전의 촉진제가 될 수 있다. 현재 디지털자산 관련 기업과 인재는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지방은 제도적 기반과 자원 유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다. 특구 지정과 함께 규제특례, 인허가 간소화, 창업 인센티브, 외국인 투자유치 전략이 결합된다면, 지방 거점도시는 디지털경제의 신흥 허브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ICO와 스테이블코인 등 파급력이 큰 신규 사업을 제한적이되 제도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세계 주요국들은 이미 일정 조건하에 디지털자산 발행과 유통을 허용하고 있으며, 우리 역시 제도화된 환경 속에서 실험적 시도를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특구 내에서는 투자자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한편, 기술력과 투명성을 갖춘 기업에게는 자금 조달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산업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
셋째, 외국인 투자 유치와 글로벌 기업 이전을 위한 종합적 지원 패키지가 병행되어야 한다. 디지털자산 특구에 진출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법인세 감면, 외국인 인력 비자 우대, 투자 회수 규제 완화 등 실질적 인센티브가 제공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세계 디지털자산 기업과 자본을 국내로 유치할 수 있다. 더불어 국제 컨퍼런스 개최, 글로벌 VC 및 액셀러레이터 유치, 교육·연구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산업 생태계의 질적 성장을 함께 도모해야 한다.
이러한 디지털자산 특구 모델은 단순한 규제 완화 수단이 아닌, 한국형 디지털자산 산업 육성을 위한 전략적 전진기지로 기능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산업계가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제도 설계 및 운영에 공동 참여한다면, 디지털자산 특구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디지털 경제 질서에서 주도적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실질적 발판이 될 것이다.
새정부는 디지털자산 특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각 지자체가 지역 특성에 맞는 전략을 제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자율성과 지원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디지털 경제 시대의 균형 발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지금이야말로 그 실행을 위한 골든타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