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에 바란다] ④ ‘디지털자산 규제 샌드박스’ 제도 신설의 필요성

| 정구태

디지털자산, 이제 국가가 답할 차례다.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는 본지 기고를 통해, 새정부가 디지털경제 주도권 확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5회에 걸쳐 제시한다. [편집자주]

디지털자산 산업은 물리적 인프라보다 제도적 유연성이 핵심인 분야이다. 가상자산, 블록체인, 토큰증권(RWA/STO), 스테이블코인 등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자산 관련 서비스는 기존 전통 금융법 체계의 경계 밖에서 출현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현행 규제체계만으로는 이러한 기술과 서비스의 발전 속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에 명확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제도권 안으로의 단계적 편입을 위한 유예 장치를 마련하고, 제도와 기술이 함께 진화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이에 따라 ‘디지털자산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신설을 제안한다.

디지털자산 규제 샌드박스는 기존 금융 샌드박스와 차별화된 구조를 가져야 한다. 기존 제도는 금융기관 중심의 전통 규제 틀 내에서 제한적으로 작동하였지만, 디지털자산 분야는 탈중앙화, 분산원장 기술, 프로토콜 기반 거버넌스 등 새로운 형태의 기술과 시장 구조를 내포하고 있는 만큼, 보다 확장적이고 기술 친화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특히 NFT, DAO, 스테이블코인, RWA 등은 금융의 경계를 넘어 통신, 콘텐츠, 제조, 공공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과 융합되고 있어, 이들을 포괄할 수 있는 산업 간 통합 실험장이 필요하다.

이 제도는 대통령 직속의 디지털자산위원회와 같은 정책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금융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법무부 등 관련 부처의 기능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통합적 심사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업은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기 전에 규제 적용 여부를 사전적으로 확인하거나, 일정 기간 규제를 유예받고 실험을 진행할 수 있게 되어 제도적 예측 가능성과 안전망 속에서 혁신을 추진할 수 있다.

디지털자산 규제 샌드박스는 단순한 스타트업 육성 정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대형 금융사, IT 기업, 통신사, 제조업체 등 이종 산업 간 협업 기반의 프로젝트가 가능한 제도적 유연성을 갖추어야 하며, 이를 통해 전통 금융과 디지털 기술 간의 새로운 접점을 모색하는 테스트베드형 정책 실험이 가능해질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이미 아부다비, 두바이, 싱가포르 등은 디지털자산 특화 샌드박스를 운영하며 글로벌 기업과 자본을 유치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의 속도와 유연성을 보장할 수 있는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이제는 "기술이 제도를 기다리는" 후행적 구조에서 벗어나, "제도가 기술을 맞이하는" 선제적 대응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디지털자산 규제 샌드박스는 그 첫 출발점이 될 수 있으며, 이는 단지 기술 실험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산업의 경쟁력과 국가 디지털 주권을 지키기 위한 핵심 전략이 될 것이다.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제도 신설과 동시에 다음과 같은 조건이 병행되어야 한다. 첫째, 디지털자산 관련 전문 인력의 양성과 조직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둘째, 글로벌 기준과의 정합성을 확보함으로써 해외 투자자 및 기업의 신뢰를 유도해야 한다. 셋째, 심사와 운영 과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민간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열린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산업계, 학계, 연구기관, 법조계가 함께 참여하는 ‘열린 규제 실험실’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디지털자산이라는 새로운 자산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 더 이상 늦출 시간이 없다. 디지털자산 규제 샌드박스는 혁신을 보장하면서도 사회적 안정성과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제도적 해법이다. 지금이야말로 그 첫 단추를 꿰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