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스테이블코인 판도 바꾼다…카이코 리서치 "달러 중심 체계에 균열"

| 이도현 기자

글로벌 암호화폐 데이터 리서치 기업 카이코 리서치(Kaiko Research)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유로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성장 가속화와 유럽의 제도적 대응 현황을 분석하며, 미국 중심의 스테이블코인 시장 구조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을 짚었다.

유럽 대형 금융기관들이 스테이블코인을 실험에서 실행단계로 전환하며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도이체 뵈르제, 소시에테 제네랄, UBS 등은 온체인 결제, 자산화 채권 운용, 토큰화된 펀드 관리 등 다양한 형태로 실 사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소시에테 제네랄은 SG-Forge를 통해 기관 대상 결제수단으로 설계된 유로화 스테이블코인 ‘EURCV’를 정식 출시하며 유럽 내 새로운 결제 수단을 제시했다. 이는 달러화 자산 중심의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체계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구축하는 움직임이다.

카이코 리서치 분석에 따르면, 2024년 6월 30일 유럽연합(EU) 암호자산시장규제(MiCA) 도입 이후 유로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EURC와 EURCV의 거래량은 크게 증가했다. 반면, 애초 시가총액 기준으로 2위였던 EURS는 뚜렷한 거래량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며 EURC와 EURCV에 시장 점유율을 내주고 있다. 거래소별 분포도 가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2025년 초 코인베이스가 EURC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했으나, 불리시(Bullish), 크라켄(Kraken), 에어로드롬(Aerodrome) 등의 참여로 시장점유율이 다변화됐다.

시장 집중도 지표인 허핀달-허쉬만 지수(HHI) 또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카이코 리서치의 보고서에 따르면 EURC 시장은 연초 9,000~10,000 사이의 매우 높은 집중도로 시작했으나, 가을에는 4,000 이하로 떨어졌으며 연말 기준 다시 5,000~6,000 수준으로 회복되며 소수 플랫폼에 대한 의존이 재강화되고 있다.

가격 안정성 차원에서 EURC는 EUR과 거의 1:1 비율에 밀착한 거래를 유지하며, 시장에서의 페깅(pegging) 신뢰도도 확보해가고 있다. 반면 EURCV는 유동성이 여전히 미미하며, 강한 기관 발행력에 비해 실 사용자 채택은 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산들은 규제 변화와 함께 시장 유입이 점차 확대되며 점진적인 대안 스테이블코인으로서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EU의 MiCA는 이 같은 흐름에 제도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발행자 및 거래소에 대한 강력한 규제 적용과 EU 전역에서 통일된 ‘패스포트’를 제공함으로써 법적 명확성과 투자자 보호를 강화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미카의 강제성 높은 규제 요건이 고정비 증가 및 유동성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역내 생태계 경쟁력을 제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카이코 리서치는 미카 라이선스 보유 여부에 따라 주요 거래소의 시장 접근성에 차이가 발생함을 지적했다. 미규제 관할권 대비 불리한 입지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미카가 갖는 의미는 디지털 자산의 제도화 발판이자, 미국 중심의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균형을 맞추기 위한 유럽의 전략적 대응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유로화 스테이블코인은 이제 실험 단계를 넘어 실제 금융 인프라 구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유럽 주요 은행이 발행한 자산이 주류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가운데, MiCA 시행 이후의 유동성 개선과 거래량 확대 추세는 앞으로 EUR 기반 디지털 자산 생태계가 본격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유럽이 달러 패권에 도전하며 규제와 혁신 사이의 균형을 얼마나 정교하게 유지하느냐가 향후 시장의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