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기술이 등장하면 절대 뒤로 돌아가지 않는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에서 20년간 근무하며 비트코인·이더리움 현물 ETF 출시를 진두지휘했던 인물이 이제 나스닥 상장 이더리움 트레저리 기업의 수장으로서 서울을 찾았다. 샤프링크(SharpLink) CEO 조셉 샬롬(Joseph Chalom)은 토큰포스트와 단독 인터뷰에서 이더리움의 장기 비전, 한국 시장의 가능성, 그리고 전통 금융과 크립토의 공존 방정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블랙록에서의 '아하 모먼트' — 금융 시스템은 생각보다 훨씬 망가져 있었다
샬롬 CEO의 크립토 여정은 블랙록의 핀테크 플랫폼 '알라딘(Aladdin)'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12년간 맡으면서 시작됐다. 알라딘은 세계 최대 규모의 포트폴리오 관리 및 리스크 시스템으로, 그에게는 기존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최전방에서 목격하는 자리였다.
"금융 시스템이 얼마나 깨져 있는지 앞줄에서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2018년 블랙록 블록체인팀을 맡게 된 그는 대형 기관투자자가 이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고, 세 가지 핵심 테제에 도달했다. 첫째,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 가치 이동 방식을 바꿀 것. 둘째, 비트코인과 이더를 직접 보유할 수 없는 기관 고객을 위한 ETF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셋째, 가장 강력하다고 보는 것은 대부분의 금융자산이 토큰화(tokenization) 형태로 디지털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나의 '아하 모먼트'가 아니었습니다. 투자자를 위해, 투기꾼이 아닌 투자자를 위해 우리가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데 수년이 걸렸습니다."
비트코인·이더리움 현물 ETF의 탄생 — "수요를 만든 게 아니라, 수요가 이미 있었다"
블랙록의 비트코인 현물 ETF(iShares Bitcoin Trust, IBIT)와 이더리움 현물 ETF 출시는 2024년 디지털자산 시장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였다. 그 이면에는 수백 곳의 기관, 자산관리사, 규제당국과의 대화가 있었다.
"많은 규제기관 산하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이나 이더를 직접 매수할 수 없었습니다. 커스터디 관계가 없었고, 규제 래퍼(regulated wrapper) 안에서 크립토 익스포저를 원했습니다."
18개월간 미국 SEC와 협업한 끝에 2024년 1월 11개 발행사와 함께 승인을 받았고, 이 상품들은 뛰어난 시장 적합성(market fit)을 보여줬다. 샬롬 CEO가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은 상품 자체가 아니라, 전통 금융과 크립토 커뮤니티 사이에서 '번역자(translator)' 역할, 즉 두 세계를 잇는 '다리(bridge)'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샤프링크 — "비트코인 트레저리의 이더리움 버전, 그 이상"
6주간의 은퇴 끝에 다시 현업으로 돌아온 샬롬 CEO가 이끄는 샤프링크는 나스닥 상장 DAT(Digital Asset Treasury) 기업이다. 마이클 세일러(Michael Saylor)의 스트래티지(구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비트코인 트레저리의 선구자라면, 샤프링크는 이더리움 트레저리의 선구자를 자처한다.
그렇다면 왜 비트코인이 아닌 이더리움인가?
"비트코인은 네이티브하게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수익을 내려면 전환사채 발행 등 금융공학이 필요하죠. 반면 이더리움의 이더 토큰은 네이티브하게 생산적입니다. 스테이킹만으로 약 2.75%의 무위험 수익률에 가까운 리턴을 얻을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장기 테제다. 현재 스테이블코인의 약 65%, 토큰화 자산의 70% 이상이 이더리움 네트워크 위에 있다. 10년 반 동안 한 번도 다운된 적 없는 네트워크, 100만 명의 밸리데이터, 중립적이고 프로그래밍 가능하며 탈중앙화된 인프라 — 샬롬 CEO는 이것이 금융자산 토큰화의 '신뢰할 수 있는 네트워크'로서 수십 년에 걸친 기회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본다.
ETF와 DAT의 결정적 차이 — "영구 자본의 힘"
샤프링크의 차별화 전략은 '영구 자본(permanent capital)'이라는 구조적 강점에 있다.
ETF는 투자자가 매일 자금을 넣고 뺄 수 있기 때문에, 운용사는 유동성을 항상 확보해야 하고 전체 이더를 스테이킹할 수 없다. 반면 DAT 구조의 샤프링크는 보유 이더의 거의 100%를 스테이킹에 투입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디파이(DeFi)에도 참여할 수 있다.
실제로 샤프링크는 컨센시스(ConsenSys), 리네아(Linea), 이더파이(EtherFi), 아이겐클라우드(EigenCloud)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이더를 리스테이킹하면서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공개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이 리퀴드 리스테이킹 솔루션을 규제된 은행 면허 적격 수탁기관인 앵커리지 디지털(Anchorage Digital) 안에서 운용하는 데 성공했다.
"기관급 디지털자산 트레저리라면, 투자자를 위해 전체 수익률을 확보하면서도 규제된 적격 수탁기관의 보호 안에 둘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차별화 포인트입니다."
주가가 순자산가치(NAV) 대비 프리미엄일 때는 적극적으로 자본을 조달해 30억 달러 이상을 확보했고, 현재처럼 디스카운트 구간에서는 주식 발행을 중단해 투자자 희석을 방지한다. 그러면서도 스테이킹 보상으로 약 12,000 ETH를 추가 축적해 총 866,000 ETH 리저브를 확대했다. 핵심 지표는 단순한 이더 축적이 아닌 '주당 이더 집중도(ETH concentration per share)' — 출범 이후 이 수치를 두 배로 늘렸다.
Clarity Act와 스테이블코인 전쟁 — "입법이 안 되더라도, 규제가 답을 줄 것"
미국 의회에서 논의 중인 Clarity Act(시장구조 법안)가 은행업계와 크립토 업계 간 갈등으로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 대해, 샬롬 CEO는 독특한 관점을 제시했다.
핵심 쟁점은 스테이블코인이 투자자에게 수익률(yield)을 제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대형 은행들은 소매 예금을 저금리로 받아 대출에 활용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는데,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수익률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면 이 모델이 위협받는다. 현재 코인베이스(Coinbase) 등이 이끄는 크립토 커뮤니티와 최대 은행들 사이에 정면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샬롬 CEO의 시각은 낙관적이다. "입법을 통한 명확성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미국의 SEC와 CFTC라는 두 핵심 규제기관이 규칙 제정(rulemaking)을 통해 시장구조에 대한 명확성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크립토 커뮤니티도 그것이 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흑백논리가 아닌, 제3의 경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시선 — "아시아의 디지털 금융 관문이 될 수 있는 나라"
샬롬 CEO는 두 번째 서울 방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으로 정부, 규제당국, 크립토 커뮤니티, 금융계가 함께 모이기 시작한 점을 꼽았다.
"미국이 디지털자산의 리더였다면, 한국은 혁신 역량과 기술 지향적 전략, 소비자 문화를 바탕으로 아시아의 디지털자산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그가 한국 규제당국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명확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과 고위험 크립토 자산이 거의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는데, 디지털자산 도입은 진화적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스테이블코인(자국 통화의 토큰화)을 승인하고, 이어서 국채 등 저위험 수익형 자산으로 확장하며, 궁극적으로는 한국 증권거래소의 주식까지 토큰화해 더 빈번하게 거래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린다.
"규제당국에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하고 함께 협력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크립토 커뮤니티는 전통 금융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규제당국도 마찬가지였고요."
한국 시장에서 비트코인 DAT가 등장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이더리움 DAT의 한국 진출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지를 내비쳤다. "규제가 명확해지는 즉시, 한국 투자자들에게 이더리움 익스포저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단, 규제적으로 가장 건전한 방식으로요."
샤프링크의 장기 비전 — 축적, 생산, 투자, 그리고 사업 구축
샬롬 CEO는 샤프링크의 로드맵을 네 단계로 설명했다. 첫째, 이더리움 축적. 둘째, 보유한 이더리움을 업계 최고 수준으로 생산적으로 운용. 셋째, 리저브 토큰으로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이더를 생태계에 투입해 다양한 이더리움 프로토콜을 부트스트래핑. 넷째, 궁극적으로 블록체인 생태계 안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운영 기업을 구축하는 것이다.
"축적에서 생산으로, 생태계 투자로, 그리고 사업 구축으로. 기관급 역량을 쌓아가고 있기에 매우 점진적이고 선형적으로 할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는 자신의 철학을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이더리움은 혁명이 아닌 진화의 리더가 될 것입니다."
사회와 경제가 더 개방적이고, 탈중앙화되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확신. 6주만에 은퇴를 접고 다시 전장에 뛰어든 블랙록 20년 베테랑의 눈에는, 그 진화의 중심에 이더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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