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시장을 다루는 업계 담론에서 여전히 통용되는 서사가 하나 있다. "폴리마켓은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 미국인들은 VPN을 써서 우회한다." 이 서술은 2025년 말 이전까지는 사실이었지만, 지금은 틀렸다.
폴리마켓은 2022년 1월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로부터 140만 달러 민사 제재와 함께 미등록 파생상품 거래소 운영을 이유로 영업정지 명령을 받았다. 이후 약 3년간 미국 이용자 접근을 차단했다. 그러나 2025년 7월, 폴리마켓은 CFTC 인가 파생상품 거래소 QCEX를 1억 1,200만 달러에 인수했다. 같은 해 9월 CFTC는 사실상 운영 재개를 허용하는 '노액션' 서한을 발행했고, 11월에는 정식 '지정계약시장(DCM) 개정 명령'을 부여했다. 2025년 12월 2일, 폴리마켓은 미국 시장에 공식 재진입했다.
다만 복잡성은 연방 차원이 아닌 주(州) 차원에서 남아 있다. 네바다 게임 통제위원회는 2026년 1월 주 면허 없이 이벤트 계약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고, 테네시, 매사추세츠 등도 유사한 규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연방 승인과 주별 규제 사이의 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440억 달러: 숫자가 말하는 것
2025년 예측시장 전체 거래량은 440억 달러를 넘어섰다. 그중 폴리마켓과 칼시가 전체의 85~90%를 차지했다. 플랫폼별로는 폴리마켓이 215억 달러, 칼시가 171억 달러를 기록했다.
성장 속도는 가파르다. 칼시의 2025년 거래량은 전년 대비 1,108% 증가했고, 월별 거래량은 2024년 1~2억 달러 수준에서 2025년 12월 63억 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다. 폴리마켓의 월간 활성 트레이더 수는 2025년 10월 47만 7,850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간 거래량 기준으로도 두 플랫폼 합산이 52억 달러를 넘어선 시점도 있었다.
규모 비교를 위한 맥락도 필요하다. 동기간 바이낸스의 현물 거래량은 수조 달러 규모다. "주요 크립토 거래소보다 많다"는 표현은 중소형 거래소 기준으로는 성립하지만, 업계 전체 비교로 읽히면 오독이다. 다만 예측시장이 2~3년 전까지 수십억 달러 단위조차 아니었던 점을 고려하면, 440억 달러는 구조적 성장을 나타내는 숫자임은 분명하다.
두 개의 전략, 두 개의 결과
칼시(Kalshi)의 창업자 타렉 만수르(Tarek Mansour)와 루아나 로페스 라라(Luana Lopes Lara)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출신으로, 처음부터 규제 취득을 핵심 전략으로 설정했다. 2020년 창업 이후 CFTC와 3년에 걸친 협상 끝에 2023년 지정계약시장 인가를 받았다. 같은 해 미국 법원이 칼시의 정치 이벤트 계약 상장 권리를 지지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규제 모델의 유효성이 확인됐다. 2025년 5월에는 CFTC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도 승소하며 미국 내 운영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칼시는 이후 로빈후드, 코인베이스 등 주류 플랫폼과의 통합을 통해 비크립토 이용자층까지 확장했다. 2025년 기준 칼시는 글로벌 예측시장 점유율 62%를 차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폴리마켓의 경로는 반대였다. 규제 없이 빠르게 성장했고, 제재를 받은 뒤에야 컴플라이언스 경로를 찾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시장을 3년 가까이 이탈해야 했고, 그 공백은 칼시가 채웠다. 다만 폴리마켓은 이 기간 동안 미국 외 글로벌 시장에서 최대 예측시장으로 성장했고, 2025년 10월 인터콘티넨탈 익스체인지(ICE)로부터 최대 20억 달러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80억 달러(2026년 2월 기준 90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규제가 해자(moat)가 되는 구조
칼시의 CFTC 인가가 단순한 규정 준수를 넘어 경쟁 우위로 작동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CFTC 지정 거래소라는 지위는 미국 기관 자본이 법적 리스크 없이 유입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폴리마켓이 미국 재진입에 성공했음에도 칼시가 여전히 미국 내 거래량에서 우위를 유지하는 구조적 배경이 여기 있다.
신규 진입자들도 이 교훈을 빠르게 학습하고 있다. 제미나이(Gemini)는 2025년 12월 CFTC로부터 이벤트 계약 플랫폼 '제미나이 타이탄' 운영을 위한 DCM 인가를 받았다. 드래프트킹스(DraftKings)도 스포츠 베팅 규제와 별개로 예측시장 앱을 출시했다. 크립토닷컴(Crypto.com)은 파나틱스(Fanatics)와 파트너십을 통해 스포츠·금융·정치 이벤트 계약 플랫폼을 내놓았다.
예측시장의 다음 과제: 정보 비대칭과 인사이더
시장이 커지면서 새로운 규제 논쟁도 부상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축출 작전 직전 익명 트레이더가 수만 달러를 베팅해 40만 달러 이상 수익을 거뒀다는 사례가 공론화됐다. 이스라엘 공군 장교들이 자국의 이란 공습 정보를 활용해 폴리마켓에서 수십만 달러를 수익을 거뒀다는 사실이 기소로 이어지기도 했다. 미국 하원에서는 2026년 '공공 청렴 금융 예측시장법(Public Integrity in Financial Prediction Markets Act)'이 발의됐다. 연방 공무원과 선출직이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결과물에 베팅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예측시장은 "인류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정확한 도구"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정확성이 때로는 내부 정보 우위를 가진 참여자에 의해 달성된다는 사실이 시장의 신뢰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시장은 이미 결론을 내렸다
예측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자본 시장은 분명한 답을 내리고 있다. 칼시는 최근 라운드에서 세쿼이아, a16z, 패러다임 등의 지원을 받아 50억 달러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폴리마켓은 ICE 투자를 포함해 90억 달러 밸류에이션을 달성했다.
두 플랫폼이 도달한 결론은 하나다. 예측시장에서 규제는 진입 장벽이 아니라 진입 조건이다. 먼저 규제를 구축한 플랫폼은 시장을 선점했고, 뒤늦게 규제를 사들인 플랫폼은 수년간의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암호화폐 업계 전반에서 반복되는 교훈이 예측시장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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