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3 벤처캐피털(VC) 업계의 ‘피치 덱’이 점점 힘을 잃고 있다. 모두가 비슷한 문장을 반복하면서 차별성이 사라졌고, 자본은 ‘가능성’보다 ‘브랜드’로 쏠린다는 지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웹3 VC들이 내세우는 핵심 메시지는 몇 년째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생태계 전반의 깊은 네트워크’, ‘자본 이상의 가치 제공’, ‘연결이 곧 경쟁력’이라는 문구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 같은 표현이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출자자(LP)들은 이미 수없이 반복된 주장에 익숙해졌고, 초기 운용사들은 뚜렷한 실적 없이 유사한 구조의 자료를 제시하는 데 그치고 있다.
데이터는 오히려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신생 VC들이 기존 대형 펀드보다 상위 성과를 낼 확률이 높고 평균 수익률도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자금이 몰리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왜 이 펀드를 선택해야 하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은 검증된 브랜드로 흐르고, 잠재력이 높은 신생 운용사는 기회를 얻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부 VC들은 접근 방식을 바꾸고 있다. 핵심은 펀드를 ‘스토리’가 아닌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누구를 알고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구축했고 어떤 데이터를 축적했는지가 경쟁력이 돼야 한다는 논리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벤트 기반 전략이다. 단순 네트워킹이 아닌, 대규모 컨퍼런스와 커뮤니티를 직접 구축해 관계와 데이터를 동시에 확보하는 방식이다. 창업자, 투자자, 파트너가 모이는 환경 자체를 만들고, 여기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투자 발굴과 심사에 활용하는 구조다.
실제로 한 VC는 2025년 한 해 동안 4만3000명 이상의 참가자와 100개 이상의 파트너를 끌어모으며 이를 ‘데이터 기반 딜 소싱 엔진’으로 연결했다. 이벤트와 펀드가 하나의 순환 구조로 작동하는 셈이다.
다른 운용사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아웃라이어 벤처스(Outlier Ventures)는 액셀러레이터 모델을 강화해 초기 창업자 지원에 집중하며 300개 이상의 포트폴리오를 확보했다. 단순 투자자가 아니라 ‘성장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패러다임(Paradigm)은 정반대 전략을 택했다. 직접 프로토콜 개발에 참여하는 기술 중심 접근이다. 단순 투자에 그치지 않고 생태계 구축에 기여하면서 복제하기 어려운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펀드가 자본 이상의 ‘실제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더 이상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더 잘 설명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 설득을 필요 없게 할 것인가”로 바뀌고 있다.
웹3 시장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지금 인프라를 구축한 운용사는 장기적으로 강한 지위를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여전히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데 그치는 VC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결국 웹3 VC 경쟁의 본질은 변하고 있다. ‘관계’가 아닌 ‘구조’, ‘약속’이 아닌 ‘증명’이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는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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